<물부족 비상> ④산간.섬 주민 "목욕은 사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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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부족 비상> ④산간.섬 주민 "목욕은 사치" 간이상수도 의존 `물부족' 일상화‥근본대책 시급
(단양.신안.태백=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빨래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마을회관에 모여서 한꺼번에 하고요, 목욕이라도 하려면 20㎞ 떨어진 단양 읍내까지 나가야 합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 2리 이장 김일산(50)씨는 좀처럼 비를 뿌려주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김 이장이 눈조차 내리지 않는 겨울 하늘을 애타게 바라보는 동안 그가 사는 용부원2리 버들밭 마을 25가구 주민들은 요즘 급수 차량 오는 시간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면사무소가 운영하는 3.5t 급수차가 오지 않으면 식수조차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밥을 짓고 마실 물조차 모자라는 형편에 빨래나 목욕은 사치에 가깝다. 마을 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회관에 모여 빨래를 하는 풍경은 마치 한국전쟁 직후를 연상케 할 정도다. 월악산 기슭인 충북 제천시 덕산면 삼전마을 31가구도 마을 뒷산 계곡에 설치해둔 간이상수도가 오랜 가뭄으로 말라붙어 지난해 말부터 하루 한 차례씩 소방차가 실어나르는 물을 받아 쓰고 있다. 유독 산골 마을이 많은 충북에는 급수차에 의존해 살아가는 마을이 14곳이나 된다. 이 밖에도 제한 급수를 하는 지역은 충북 제천, 단양, 충주, 괴산, 음성까지 충북도 내 5개 시.군, 21개 마을에 이른다. 하루 1∼2시간밖에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바라보며 애를 태우는 충북 주민은 1천200여명에 달한다. 강원도 태백권 고지대 주민들도 지난달 28일부터 육군 36사단이 실어나르는 물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산골은 섬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간이상수도조차 없는 전남 신안의 섬 주민 6천여명은 빗물과 계곡물을 공용탱크에 받아 나눠쓰고 있다. 요즘에는 이마저도 부족해 사흘에 한 번씩 물을 공급받는 제한급수가 시행되고 있다. 임자도(신안군 임자면 임자리) 주민 1천여명은 하루 20t의 물로 버티고 있고, 흑산도(흑산면 진리, 예리)와 도초도(도초면 수항리) 주민들도 작년 9월부터 공용탱크 물을 사흘에 한 번씩 공급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국토 최서남단의 가거도 주민 500여명도 계곡에 설치해둔 300t 용량의 탱크에 물을 저장해 놓고서 이 물을 마을로 연결된 상수관으로 나눠 쓰는데 사흘에 한 번씩 물을 받고 생활한 지 오래다. 산골이나 섬 마을 주민들이 이처럼 겨울 가뭄에 시달리는 것은 마을 뒷산 계곡에 설치해 둔 간이상수도나 마을상수도, 우물 등이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말라붙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판 관정(管井)은 지하 20∼30m 깊이에 불과해 가뭄이나 오염에 취약하다. 이런 산골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광역.지방상수도망이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간이상수도에 물이 떨어지면 식수조차 해결하기 어렵다. 강에 흐르는 물을 댐에 가둬놓았다가 필요할 때 정화해서 쓰는 국가상수도망 덕에 물 부족을 실감하지 못하는 도시 주민들과는 사정이 전혀 다른 셈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7년 말 현재 간이상수도나 마을상수도, 우물 등에 의존해서 사는 주민들은 전국적으로 210만명에 이른다. 사정이 열악하기는 산골 주변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런 도시에는 광역상수도가 연결돼 있지만 댐에 저장된 물이 다른 도시 주변 댐보다 먼저 바닥을 드러내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 강원도 태백과 정선, 고한 등 태백권 주민 4천300여명은 하루 96대의 급수 차량에 의존한 채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광역상수도를 통한 물 공급이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자 태백과 정선에서는 지난달 15일부터 광역상수도 공급량을 평일의 50% 수준으로 급격히 줄이는 등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특히 광동댐에 의존하는 태백시는 광역상수도 공급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고지대에 대형 물통 38개를 설치했고, 심지어 한강의 발원지인 검용소와 낙동강의 최상류인 황지천에 둑을 쌓아 간이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또 황지천의 취수량을 하루 최대 2천t까지 늘리려고 가압 펌프, 지름 100㎜의 관로를 갖춘 하루 시설용량 1천t 규모의 비상급수시설 설계에 들어갔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광동댐의 물이 늦어도 4월 초에는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자 사수(死水.취수탑 아래에 있어 자연적으로는 취수할 수 없는 물)를 수돗물로 사용하기 위해 수중펌프, 길이 250m의 관로 등을 갖춘 취수시설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도 손을 놓은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호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충북도는 급수 차량 50대와 물탱크 145개를 동원하는 한편, 행정안전부에서 지원받은 20억원의 특별교부세로 취약 지역에 새로 관정을 파거나 취수장과 급수관을 교체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전남도는 지난해 11월부터 59억원을 들여 여수 등 8개 시.군 70개 마을에서 새로 관정을 파고 있다. 늦게나마 대책이라고 나온 것은 지하수 관정을 더 깊게 파는 것일 뿐 간이상수도 대신 국가 상수도망을 산골과 섬에도 연결한다는 대책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봄이 되면 물 부족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아 산골과 섬 주민들의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cbebo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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