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맛기행(1)
새해 벽두부터 쏟아진 눈 때문에 도로 군데군데 채 녹지않은 얼음이 밖을 나서는 발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깔깔할 입맛까지 더해져 이럴때는 한끼 떼우는 것 조차 귀찮기 짝이없다.
어떤 이가 갈치조림이나 먹으러 가면 어떻겠냐며 기자의 손을 붙잡는다. 회사 밖을 나서 차를 타고 한 10분정도 갔을까. 그리 화려하지 간판, 음식점에 들어서자 구수한 음식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게다가 테이블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 집 갈치는 광주에서 최고야’라는 격찬이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광주시 동명동에 자리한 ‘새광주회관’은 한식전문 음식점이다. 그 중에서도 ‘갈치조림정식’은 사장 유영미씨(52·여)가 누구에게 내놓아도 자신있는 메뉴다.
식탁이 없이 음식점 전체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서 먹도록 돼 있다. 마치 아랫목에 앉아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 먹는 것 같아 우선 마음이 푸근해진다.
갈치조림은 목포 먹갈치에 호박, 감자, 무를 올리고 파·마늘 등 갖은 양념과 이 집만의 고추다대기기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 약한불에 20여분 정도 조린 요리다.
조리 과정은 여느 가정집과 큰 차이가 없지만 칭찬이 자자한 이유가 있다. 바로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고 갈치와 야채만으로 우려내는 정갈한 국물 맛 때문이다.
이 곳에선 모든 음식의 간을 조선간장과 소금으로만 맞춘다.
갈치조림의 제법 진한 붉은 색이 맵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전혀 아니다.
맵지도 않고 개운한 국물 맛을 내는 데는 최고의 재료와 어우러진 정성이 그 비법이다.
거기다 유 사장만의 노하우가 담긴 육수가 또 한가지의 비밀. 어떤 식물을 고아 만든다는 육수는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특급 기밀(?)이여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갈치는 목포의 먹갈치만을 사용한다. 목포 먹갈치는 11월부터 12월중순까지가 제철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집의 갈치조림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때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갈칫살과 사근사근 씹히는 감자, 달콤한 호박, 여기에 미리 조려 양념 맛이 제대로 배어든 무까지 일품이다. 갈치를 먹고난 뒤 국물에 비벼먹는 밥 맛은 또 다른 별미.
보통 2~3년 씩 묵혀 내놓는 젓갈류, 장아찌 등의 밑반찬은 전라도 사투리로 ‘개미’가 있다. 진석화젓을 비롯, 도라지 장아찌, 깻잎 장아찌, 돈배젓(전어 창젓)등 대여섯가지에 이른다. 물론 유 사장이 직접 담근것들이다.
특히 진석화젓은 서울에서까지 전화로 주문할 정도로 인기다. 그도 그럴것이 굴 살이 꽉 찼을 때인 음력 정월 보름 굴을 사 소금에 절여 두어 달 삭힌 뒤 우려난 진국을 끓여 조린 물을 부어 몇년 동안 묵히는 정성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년 내내 떨어지지 않는 묵은 김치도 좋다. 입맛이 없어 묵은 김치 먹고 싶다며 찾는 단골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유 사장에게 잘(?) 보이면 짱뚱이탕도 맛보는 행운이 돌아온다.
유 사장이 갈치조림과 함께 자랑하는 짱뚱이탕은 우거지와 어우러진 시원한 국물맛으로 속풀이는 물론, 스테미너 식품으로도 그만이라는 것.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들이지만 한번 다녀 간 사람은 다음에 줄줄이 혹을 달고 또 온다.
감칠맛 나는 음식맛에 취해 벽 한쪽에 세워진 12폭 병풍 위의 조선후기 시가시인 이서구가 지었다는 ‘호남가’를 감상하다 보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갈치조림 정식은 1인분에 1만2천원, 짱뚱이 탕은 한 그릇에 8천원, 앞쪽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가져와도 부담이 없다.(223-1777, 223-5777)
홍선희 기자 sunny@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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