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전라도 이색마을

“바람 잘 통해 음식 상할일 없제”

화이트보스 2009. 2. 19. 17:23

[전라도이색마을]“바람 잘 통해 음식 상할일 없제”

[전라도이색마을]<31·完> 담양읍 차전리 석짝마을
3년이상 자란 것 사용해야 좀 안슬고 튼튼
시집 장가 이바지땐 필수…홀수로 구입해
중국산 물밀듯 넘치지만 담양産명성 여전


 


전남 담양군 담양읍 차전리 내다마을 송동수·국쌍순씨 내외가 석짝을 만들고 있다.




쓱싹 쓱싹 톱질이야, 툭. 쓱싹 쓱싹 톱질이야, 툭. 마당 한켠에 쪼그려 앉아 원하는 제 크기로 대를 잘랐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 차전리 내다마을 송동수(73) 할아버지 댁 마당 한켠.

오랜 세월 손때를 탄 가늠자가 대나무다. 가늠자를 대고 대나무를 알맞게 자른다. 능숙한 솜씨지만 꼬박꼬박 가늠자를 댔다. 여러개를 나란히 세웠더니 키가 똑같다. 대나무 마을서 나고자란 덕에 50년을 이어왔다.

툭툭 털고 일어났다. 방안 작업이 송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방안에는 벌써 오십여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온 국쌍순 할머니가 바쁜 손놀림을 선뵌다.

착착 석짝을 휘감는 것이 안봐도 척척이다.

물었다.

“마을 이름이 차전린데 예전에 차밭이 있었습니까.”

송 할아버지.

“차차에 밭전자를 써서 차전리여. 지금도 죽로찻잎을 따서 차를 덖은께. 진즉부터 대밭천지에 차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제.”

“왜 석짝마을인지 자랑좀 해주세요.”

“자랑이라면 뭐 하지만서도. 우리 마을은 한 60여호 사는데 석짝만드는 집은 한 열댓집 되제. 전부가 다 담양서 자란 대나무로 석짝을 만들어. 네모진 말석하고 지다란 진석, 모양은 이렇게 두가지고, 크기별로는 일곱치짜리, 여덟치짜리, 아홉치짜리가 대부분이여. 낱개로 팔기도 하고 묶어서 한꾼에 내놓기도 하고.”

“차전리 석짝이 왜 이렇게 잘 팔리고 유명합니까.”

“그야 물론 품질이 좋은께 그러것제. 바람이 잘 통하니께 밥이여 뭐여 전부 담아놓으면 쉬거나 상하지를 않지. 물밀듯이 들어온 중국산은 니스칠을 해 냄새가 나고 잘 부러져. 하지만 우리마을 것은 심려 놔도돼.”

국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7~8년전만 해도 시세가 좋았제. 시집 장가 가는 집에서 이바지 해갈때 석짝을 다섯개, 일곱개, 많게는 아홉개를 한꺼번에 사가거든. 석짝에 담은 돼지고기여, 생선이여, 모두 상하지 않고 그대로 가니까 너도나도 찾았어. 특히 경상도 대구같은 디서 엄청나게 사갔지. 없어서 못팔 지경이었어. ‘소구루마’에 싣고 장에 나가면 오전 나절이면 금세 동이 났어. 요즘이사 한과담는데 많이 쓰제. 하여간 석짝 만들어 다섯남매 모두 대학까지 갈키고 집 사주고 했응께 남들은 소 팔아 자식들 키웠다지만 우린 석짝 팔아 건사했지.”

“차전리 석짝은 어떻게 만들기에 튼튼하고 좋습니까.”

국 할머니.

“일단 3년 이상 자란 담양 대를 써야해. 그래야 좀이 안슬지. 3년이 못되면 벌레가 진을 쳐 재료로서는 빵점이야. 그리고 일일이 이렇게 촘촘히 손을 놀려가며 정성스럽게 짜야 튼튼해.”

“예전보단 덜 찾습니까.”

송 할아버지.

“그렇긴 해. 요즘 사람들이 신식이 돼 가지고 덜 찾아. 하지만 좋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꾸준히 사랑해주고 있어. 이번 추석참에도 2천개를 주문받아 700개를 우리집에서 만들었어. 엊그제 실어갔어.”

“힘든 점도 있지요.”

“아암, 인자는 마을사람들이 늙어서 못하고 노인내외 중 누구 하나 하직하면 나머지 하나도 그냥 손을 떼.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일을 안할려고 하고, 하지만 힘 닿는데까정은 해야지 어쩌것는가.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살제.”

오가는 얘기속에도 두 내외의 손은 바삐 돌아갔다. 속지와 피지를 동시에 손에 걸고 휘익 휘익, 석짝을 완성해 갔다. 방안에 가득한 석짝, 두 내외의 공력이 배어있다. 올 가을 혼례를 치를 이들은 한번쯤 구경해도 손해볼일 아니다.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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