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전라도 이색마을

영광김씨와 내동마을

화이트보스 2009. 2. 24. 10:46

[전라도이색마을]영광김씨와 내동마을


 


[전라도이색마을]영광김씨와 내동마을

목포해양대 사무처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김기홍(67) 장흥문화원 운영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고향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김 위원에게, 내동마을의 역사와 오늘에 대해 듣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내동마을 마흔두가구 가운데 서른네가구가 김 위원과 같은 영광김씨 문경공파(장흥파)이니.
영광김씨가 마을에 들어온 것은 조선 단종 3년 전후.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란으로 집권할 때다. 당시 평강현감을 지낸 김경의와 큰아들이며 의성현감을 지낸 찬, 집현전 학자이던 둘째아들 필이 난세를 피해 장흥으로 남하했다. 이후 영광김씨와 내동마을은 영욕을 함께 했다.
내동마을에는 수인산 필봉아래 서당터가 두곳이다. 딱밭골과 흥룡단 아래 밭터인 흥룡재 자리. 덕택에 문사(文士) 30여명이 배출됐다.
또 내동 아랫마을인 고남이 5거리는 솟대거리라 불렸다. 대과(大科) 3명, 소과(小科) 38명이 등과했다. ‘솟대’가 과거 급제자를 위해 마을 어귀에 높이 세우던 붉은 장대를 일컬은 것을 보면 얼마나 문사들이 많았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김 위원은 “선현들의 아낌없는 가르침과 이를 따르는 후학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끊임없이 이어진 결과”라면서 “지금에야 경향 각지로 흩어져 있지만 어디에서건 각자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쓰임새 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이어 “마을의 선사와 역사를 알려주는 고인돌군과 선돌, 백제초기 석실고분, 고려고분, 화수정 등 향토문화유산을 가꾸는 일에도 관심을 가질 계획”이라면서 “이를 통해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내동마을에는 71명이 살고 있다. 60세 이상이 57명. 무려 80%를 차지한다. 늦기전에 고향을 찾을 일이다. 장흥/김상봉 기자 ksb@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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