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이색마을]고소득 마을…“인구가 늘었어요”
<24>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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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큰 바위와 작은 돌을 잇따라 끼고 돌았다. 순리대로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바람은 거슬러 올라왔다. 서사시인 지리산은 혹 서정시를 더 좋아하는 지 모를 일이다.
물과 바람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아직 힘자랑에 바쁜 햇님의 위세에 ‘세월을 낚았다’. 세상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했다. 묵묵히 갈길을 가는 나그네, 호흡을 길게하며 살갗으로 바람을 맞았다.
주말이면 더위를 피해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평일이면 온전한 평화가 깃든다.
#그림1중앙#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계곡.
구멍난 자루에서 쌀이 빠져나가듯 전남지역 농어촌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는데 반해 문수리는 정반대 모습이다. 해마다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민등록상 인구도 그렇고 유동인구 역시 그렇다.
지난 2004년 61가구 138명에서 지난해 70가구 144명, 올해는 7월말 현재 일곱가구가 늘어 77가구 155명이 살고 있다.
옛동네사람은 많이 떠났지만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위해 찾아들고 있다.
이는 문수리가 시골속 도심이라 할 만한 여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소득이 높다. 봄이면 고로쇠와 산약초, 토종꿀을 생산, 판매해 한가구당 3천만~4천만원을 거뜬히 벌어들인다. 또 여름철이후엔 민박을 포함해 펜션으로 벌이를 한다. 지리산이 가장 큰 버팀목이다. 지리산은 문수리를 지키고 있는 이와 찾아든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교육과 생활환경도 좋다. 구례읍까지 10여분 안팎이면 닿는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금세 계곡을 낀 집으로 온다. 전업주부는 금세 시장을 볼 수 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들도 제법 있다. 한낮 정자아래서 잠을 즐긴다.
이같이 평화로운 문수리는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그림2중앙#
1948년 여순사건과 연루되고 이어 한국전 당시 지리산이란 은폐물에서 활동하던 남부군, 그리고 이를 토벌하려던 국방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마을 대부분이 불태워졌고 사람들이 다쳤다. 떠났다.
지난해에는 남부군의 것으로 보이는 비트가 발견됐다. 당시 지리산 자락의 문수리가 본의 아니게 밤에는 남부군, 낮에는 국방군에게 ‘점령’당하는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받았다.
문수리에서 만난 이.
“이제는 진혼굿이라도 해서 이들의 넋을 달래고 언젠가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리는 앞으로가 더 희망이 비친다.
벌써 청정지역으로 ‘험상궂은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는데다 반달곰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15마리의 반달가슴곰이 방사됐고 이에따라 통제구역으로 지정돼 지리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폐쇄됐다. 휴식림 적용도 받는다.
#그림3중앙#
문수리 나준호씨는 “앞으로 반달가슴곰 50여마리가 더 방사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리산이 주는 천연환경과 인간의 보호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이곳은 더 살기좋은 곳으로 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리는 문수보살이 문수사에서 수년간 수도한 결과 성불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상죽마을과 중대, 불당, 밤재, 신율마을을 통합해 문수리, 문숫골, 문수동으로 부른다.
문수리를 내려오면서 오미리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8호인 조선 후기의 누각 운조루를 들러보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구례/강재순 기자 kjs@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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