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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잃고도 역적 취급 누가 나라 위해 일하겠나"

화이트보스 2009. 3. 2. 09:29

생명 잃고도 역적 취급 누가 나라 위해 일하겠나"
● 동의대 사건때 순직 경찰 7명의 유족들 울분
화염병 던진 사람들은 억대 보상금 받았는데
법 집행중 숨진 내 동생 정부 보상금 150만원
田의원 폭행한 사람들 법도 안중에 없다는 뜻
정말 민주화운동이라면 재심 왜 두려워 하나
창원=강인범 기자 ibka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광주=김성현 기자 shkim@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대구=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1989년 부산 동의대사건으로 구속됐던 대학생의 어머니 이모(68)씨가 국회 본관에서 전여옥 의원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1일 당시 대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경찰관 7명의 유족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고(故) 정영환 경사의 형이자 경찰관 유족 모임 대표인 정유환(50·대구)씨는 주말 내내 화를 삭이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었다고 했다. 그는 "화염병 던져서 경찰 7명을 죽여놓고 민주화운동이라고 인정을 받고 보상금까지 챙긴 사람들이 재심을 받으면 그게 날아갈까 봐 폭력을 쓰는 것"이라며 "정말 민주화운동이라면 재심을 받아도 또 인정받을 것 아니냐"고 했다.

2002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위)가 동의대사건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자 정씨의 맏형은 충격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3년 뒤인 2005년 헌법재판소는 정씨 등 유족들이 낸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유족은 제3자이기 때문에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값이 고작… 동의대 사건으로 희생된 경찰 유족 모임 대표 정유환(50·故정영환 경사의 형)씨가 1989년 정 경사가 사망한 이후 받은‘급여산출내역’을 보고 있다. 정경사 유가족은 보상금조로 월급의 4.5배인 약 150만원을 받았다.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정씨는 "유족이 당사자가 아니면 죽은 사람이 헌법소원을 내라는 말이냐"며 "이제 동생의 명예를 회복할 길은 동의대사건 재심이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은 국가에서 억대 보상금을 받았다"며 "내 동생이 죽었을 때 국가에서 받은 돈은 겨우 150만원이었다"고 했다. 이후 시민들이 정성을 모아 경찰 유족에게 가족당 2억원씩 성금을 전했다. 정씨는 동생의 초등학교 개근상, 미술대회 상장, 군대에서 보낸 편지 등 유품을 어루만지며 "20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떻게든 명예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고 조덕래 경사의 형 조경래(55·창원)씨는 "동의대사건을 재심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25세 때 억울하게 죽은 동생 때문에 가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 왔다"고 했다. 조 경사의 할머니는 손자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진 뒤 1994년 사망했다. 어머니 황기순(81·함안군 군북면)씨도 당시 받은 충격 때문에 지금도 심장병 약을 먹고 있다.

고 서원석 수경의 동생 원철(43·포항)씨는 "20년 전 폭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또다시 폭력을 저질렀다"며 "2002년 동의대사건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뒤 경찰 유족들은 억울함을 삭이고 사느라 가슴속이 새까맣게 타버렸다"고 했다. 서씨는 "우리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화염병을 던져 경찰의 목숨을 빼앗은 사람들이 민주 투사로 대접받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달라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고 최동문 경장의 부인 신양자(55·부산)씨는 "경찰들을 죽음으로 내몬 학생들의 가족이 잘못을 뉘우치는 대신 전 의원을 폭행했다는 기사를 보고 치가 떨려 온종일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신씨는 남편이 사망한 뒤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2평 남짓한 옷 가게를 운영하며 외아들(27)을 길렀다. 신씨는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 뿐"이라며 "대한민국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恨)"이라고 했다.

고 박병환 순경의 아버지 박광세(79·부산)씨는 수년 전 아내와도 사별하고, 중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사건 직후 학생 가족들이 장지(국립대전현충원)까지 따라와서 '용서해달라'고 매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사람을 죽여놓고 사죄까지 한 다음 보상을 받다니, 길을 막고 물어보라. 그게 무슨 민주화운동이냐"고 했다. 박씨는 "동의대사태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기에 다시 심사를 해서 평가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우리 사회에 원칙이 제대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명화 수경의 아버지 김동수(80·광주 월곡동)씨는 아들이 숨진 뒤 화병으로 심장병을 얻었고 지금은 신장병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그는 "경찰관을 죽인 사람들은 '충신'이 됐고, 생명을 잃은 경찰관들은 '역적'이 됐다"며 "잘못된 부분이 고쳐지는 걸 보고 죽어야 할 텐데 내 몸이 이 지경이라 걱정"이라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고 모성태 수경의 아버지 모종칠(72)씨는 "전 의원 폭행 사건 기사를 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싶었다"며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의무를 수행하다 죽은 사람들을 반민주로 모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입력 : 2009.03.02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