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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관리 실패로 '바닥' 보이는 낙동강댐들

화이트보스 2009. 3. 2. 09:33

물관리 실패로 '바닥' 보이는 낙동강댐들
가뭄도 문제지만 물 무분별 방류한 수자원公 문제
농업 용수 부족 위기… 심하면 식수도 차질 부를판
박은호 기자 unopar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축년(己丑年) 2월 2일 안천면장 이정열은 목욕재계하고 아룁니다. 신령님, 가뭄으로 곡식은 타고 생활식수는 부족하여…."

지난달 26일 전북 진안군 용담댐 정상에서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기우제(祈雨祭)가 열려 돼지머리를 제단에 올리고 애타게 비를 호소했다. 이날 기우제는 진안군에서 40여년 만에 열렸다. 이정열 면장(51)은 "봄철 농사짓기가 걱정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선 수량(水量) 관리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 업무 보고가 진행됐지만 가뭄은 아예 이슈로 다뤄지지 않았다. 2시간여 질의·응답 동안 낙동강 물 부족 상황을 질의하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고, 미디어법 사태로 야당 의원들은 참석하지도 않았다.
▲ 1일 낙동강 지류의 상류에 위치한 경남 고성군 삼덕저수지가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다. 물 관리에 실패한 수자원공사는 비가 더 오기만을 빌고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이날 국토해양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기자의 눈길을 끈 대목이 한 구절 있었다. '우기(雨期)가 시작되는 올 6월 20일 전까지 낙동강 다목적댐에선 1억7000만t의 물이 부족할 전망'.

1억7000만t이라면 대구 시민(250만명)이 6개월 동안 먹고도 남을 양이다. 대구시를 비롯, 영남권 29개 시·군 주민들이 의존하는 낙동강 유역 5개 댐(안동·임하·합천·남강·밀양댐)이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는데도 정부는 쉬쉬하다 뒤늦게 국회에 한 구절 슬쩍 흘린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알고 보니 '천재(天災)'인 것만도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자원공사의 부실한 물 관리가 낙동강 물 부족사태에 한몫하고 있었다.

초유의 '저수위' 미달사태

한나라당 윤영 의원의 협조로 관련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낙동강 유역 5개 다목적댐이 장마가 시작되는 6월 20일까지 공급할 수 있는 물은 예상 강우량까지 합쳐 5억6000만t인 반면 실수요량은 7억3000만t에 달했다. 댐 물을 아껴서 방류하더라도 6월 20일 이전에 물 부족사태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구미·김천 등 9개 시·군에 물을 공급하는 임하댐의 사정이 특히 심각했다. 2월 28일 현재 임하댐이 담고 있는 물(저수위 이상의 유효 저수량)은 2840만t에 불과해 실수요량(하루 평균 110만t)으로 공급하더라도 이달 하순이면 댐 수위가 저수위(低水位) 아래로 내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저수위는 평상시 댐이 유지해야 하는 가장 낮은 수위로 이보다 수위가 떨어지면 발전(發電)이 중단되고, 하류에 물을 보내기 위해선 비상 통로로 물을 흘려보내거나 댐 한가운데에 호스를 넣어 물을 펌핑하는 등 비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다목적댐 물이 저수위 아래로 내려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수자원공사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최근 몇몇 댐에서 비상 공급 실험까지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4월부터 농업용수 부족 현실화

수자원공사 내부 규정에 따르면 댐 물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①하천 생태계를 지탱하기 위해 흘려보내는 하천유지용수를 가장 먼저 줄이고 ②농업용수 ③생활·공업용수 순으로 방류량을 줄이게 된다.

농어촌연구원 박기욱 박사는 "예년보다 더 많은 비가 오지 않을 경우 4월부터 농업용수 부족으로 남부지방에 극심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5월엔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식수(食水)문제다. 수자원공사는 "하천유지·농업용수는 부족하더라도 생활·공업용수 공급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환경부 생각은 다르다. 이만의 환경부장관은 지난달 25일 '정부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낙동강 유량이 줄어들어 1-4 다이옥산(발암물질)이나 페놀 같은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이 커져 수돗물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했다.

수자원공사측은 그러나 여전히 댐 방류량을 최대한도로 줄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올 6월 20일까지 5개 댐에서 방류하는 물을 '극소화'하는 비상 운영 계획도 이미 세워졌다. 이 가운데 하천유지용수는 올 1월부터 5개 댐 가운데 합천댐을 제외한 4개 댐에선 한 방울도 내보내지 않는 조치에 착수한 상태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현재 전망대로라면 6월 이전에 농업용수 감축도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그런 사태가 오기 전에 비가 예년보다 많이 내리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물 관리 아닌 도박"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승 박사는 "매년 홍수기 3개월(6월 20일~9월 20일) 동안 댐에 물을 최대한 가둔 뒤 이 물로 나머지 9개월간 필요한 각종 용수를 공급하는 게 댐 운영의 기본 원칙인데 수자원공사가 과연 그랬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 박사의 우려는 사실로 확인됐다. 수자원공사 홈페이지의 '실시간 댐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낙동강 5개 댐이 작년 홍수기 3개월간 저장한 물은 댐 유입량(11억5900만t)의 9% 남짓한 9400만t에 불과했다. 나머지 91%의 물을 홍수 조절 등을 이유로 방류해버린 것이다.

최근 5년(2003~2007년) 동안엔 유입량의 20~30%를 저장해 왔지만 하필이면 비가 적었던 작년 홍수기에 이 비율을 대폭 줄인 것이다. 특히 합천댐·남강댐은 물을 담기는커녕 저장하고 있던 물 1억t가량을 빼낸 것으로 나타났다. 수공은 "남강댐의 경우 작년 여름 집중호우가 예상돼 서둘러 물을 대량으로 빼낼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수자원공사가 댐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비가 많이 내려줄 것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김승 박사). 낙동강 물 부족사태가 장기 가뭄에다 수자원공사의 부실 관리라는 '인재(人災)'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입력 : 2009.03.02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