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핵위기로 중단된 북일 국교교섭
1990년 9월 북한과 일본간의 ‘3당 합의’를 통하여 시작되어 2009년 2월 현재까지 18년을 넘기고 있는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은 당시의 정책결정자들이 상당히 낙관적 전망을 갖고 시작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장기화된 것이다. 2002년 9월에 실현된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결단은 일본외교의 기존 패턴과는 상이한 적극적 정치결정이었고, 북일 국교정상화에 있어서 경제협력방식의 도입, 납치문제 인정이라는 북한 김정일의 ‘통 큰’ 양보를 받아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방북 이후에 생긴 두 가지 큰 외생적 변수에 직면했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인한 일본 국내여론의 악화와 ‘제2차 북핵위기’의 발발이 그것이다.
특히, 2002년도 10월경부터 가속화된 북한의 농축 우라늄 핵개발의 표면화 및 일련의 북미 제네바합의의 파기는 제2차 북핵위기의 긴장을 초래했다. 북한이 제2차 핵위기를 일으키고 납치문제에 충분한 성의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일본 내각과 자민당 및 외무성은 강경파가 대북정책을 주도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아베내각과 아소내각에서도 여전하다. 북일 교섭 중단요인은 무엇보다 핵 ∙ 미사일 위기와 납치문제가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핵 ∙ 미사일문제는 미국과의 정책공조 없이 일본 단독으로 풀기 어려운 해법을 지녔다. 북한이 ‘선 수교, 후 경협’ 방식을 주장해도 핵 ∙ 미사일 의혹이 풀리지 않는 한 이에 응하기 어려웠다. 일본 자민당정권과 보수세력은 북핵위기와 납치문제를 미일동맹의 강화와 일본의 보수우경화에 이용했다.
2. 북핵위기에 대한 일본의 대북제재와 미일동맹
북한에 의한 2006년 7월의 일련의 노동미사일 발사와 10월의 핵실험 도발은 일본정부로 하여금 대북 강경책을 가속화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한 제재 결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두 번에 걸쳐 일본정부 단독의 대북 제재를 단행했다. 그 주된 내용은 ‘모든 북한 선박의 입항금지’와 ‘모든 북한 상품의 수입금지’ 및 ‘북한 국적을 소지한 자의 입국금지’ 등이다.
일본정부는 북한 핵이나 미사일이 직접적으로 미국 본토를 노린다고 보고 있지 않으며 이라크전쟁에 실패한 제2기 부시 행정부의 주된 관심은 북핵의 전 지구적 확산 방지라고 판단하는 면이 강하다. 현존하는 노동미사일과 북핵은 미국보다는 일본에 대한 최대 위협요인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미확인 10 여개 상당의 핵탄두 내지 플루토늄 축적에 대해 일본정부는 큰 불안과 불만을 나타낸다. 따라서 6자회담에 있어서도 일본정부가 가장 대북 강경성향을 띠었다.
일본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가 현 김정일정권의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미국이 제안하는 리비아방식에 의한 선행 ‘핵 포기’나 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의 핵폐기)에 응할 가능성은 매우 미약하며 북한이 교섭중단과 진행을 반복하면서 계속 플루토늄을 축적하여 핵미사일을 완성하는데 중점을 둘 것으로 파악한다.
오바마 미국 신정부는 북핵위기 해결에서 미일공조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바마의 동아시아 외교정책 톱 라인에 실세 지일파가 다수 등장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주일대사에 조셉 나이 전 국방차관보이자 하버드대 교수를 선정했으며, 국무성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에 지일파 정책전문가 커트 캠벨을 임용했다. 미국의 신정부는 일본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똑같은 급으로 동맹(alliance)’이라고 명확히 규정짓고 있으며, 미일동맹을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의 초석(cornerstone)’으로 위치설정을 확고히 했다.
3. 북한 급변사태 ∙ 한반도 통일문제와 일본정부
일본정부는 2008년 9월 이후 김정일의 와병설과 상당기간의 유고사태 이후 북한의 급변사태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먼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해 일본이 우려하는 시나리오이다.
첫째,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시 일본이 매우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중국의 군사적 개입과 이를 통한 북한에서의 친중정권 내지 중국 위성국가의 수립 시나리오이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중국은 어떤 형식으로든 급변사태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으며, 군사력을 신속히 동원하여 친중정권 내지 중국 위성국가의 수립을 꾀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개입은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의 제재로 군사적 충돌로 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최대위협 시나리오는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좌파정권이 들어서서 북한과 더불어 한반도 전체가 친중적인 좌파정권이 되거나 좌파적인 통일정권이 수립되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에 크게 실망한 바 있는 일본은 2012년 이후 정권변동기에 한국의 정정이 불안정해지면 한국에서 새로운 강경 좌파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을 우려한다.
셋째, 북한의 급변사태 시 북한의 정권 중추부에 큰 변화가 생기거나 쿠데타가 일어나서 핵과 미사일이 합리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큰 혼란이 오는 경우이다. 만약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대일본 강경 군사정부가 들어설 경우 일본과 미국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또한 핵과 미사일을 합리적이고도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혼란상황이 계속되는 것도 미국과 일본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넷째, 급변사태 시 북한 난민이 대량 발생하여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으로 밀려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그 위험성이 과장된 면이 존재한다. 난민이 대다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나 한국으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일본정부 내지 일본의 보수세력들이 검토하고 있는 대비책 시나리오의 분석이다. 첫째,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시 미일 간의 동맹과 협력을 공고히 하여 평소에 준비된 대응책을 신속히 발동시키도록 정책조정을 도모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1996년도 이후 미일동맹이 재정의되고 강화되면서 보다 확실해졌다. 그 첫째가 1998년의 주변사태법 제정이요 둘째가 2003년 유사법제의 제정이었다. 김정일 와병설이 본격화된 2008년 9월 이후 미일 간의 급변사태 대비책 논의가 강화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 북한 급변사태 시 미일 양국의 최대의 전략적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혼란을 방지하여 북한 핵과 미사일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질서를 회복하는 일과 중국의 대북한 군사적 개입을 방지하는 일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중국의 위성국가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한반도에 핵위협이 제거된 형태로 분단을 해소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지닌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일이다. 미일 간은 물론이고 한미일 삼국의 정책 공조가 긴요하며 나아가 중국과도 미국을 중심으로 대화와 협력, 소통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셋째, 일본은 일정 범위 내에서 한일 간에도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진전시키고 싶어한다. 급변사태시의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일 간의 긴밀한 정책공조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은 급변사태 이후의 한반도나 통일한국에 대한 발언권 확보와 중국의 영향력 증대 방지라는 전략적 목표가 존재한다.
넷째,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이다. 일본정부는 현재 북한의 핵 · 미사일 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위협의식을 가진 바, 한반도 전체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평화국가로 통일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에게 핵과 미사일 위협을 계속하는 분단상태의 지속이나 친중적인 좌파 통일국가로 전환되는 것을 훨씬 더 두려워한다. 북한이 북핵위기나 납치, 미사일 발사를 수시로 하는 비정상국가 상태를 벗어나, 미일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통일국가로서 거듭나는 것은 일본에게 대단히 바람직한 선택지이다. 한반도가 좌파정권으로 기울어지면 일본은 미일동맹을 토대로 호주, 뉴질랜드, 인도와 제휴하면서 한반도와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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