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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여전히 ‘아메리카 대마불사’를 믿는다 [중앙일보] 마구 찍어대도

화이트보스 2009. 3. 3. 16:37

세계는 여전히 ‘아메리카 대마불사’를 믿는다 [중앙일보]

마구 찍어대도 ‘몸값’ 치솟는 달러, 왜
“수익 안 나도 손실은 없어야”
사실상 제로 금리 미국 국채 시장에 나오자마자 동이 나
기축통화 유지될 거란 믿음에 힘 못 쓰는 유로·엔화도 한몫

역설적이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통화가치가 독주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가 흔들린다는 지적은 무색해졌다.

달러화의 강세는 세계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수요만 봐도 그렇다. 지난달 25일 미국 재무부는 320억 달러 규모로 만기 5년짜리 국채를 발행했다. 2006년 상반기 이후 최대 물량이었다. 그런데 이 국채는 시장에 나오자 동이 났다.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사들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제로 금리’ 상태인 미국 국채가 이처럼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그만큼 국제 금융 시장이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손실을 보느니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안전자산에 일단 묻어 놓겠다는 투자자가 많은 것이다.

◆달러의 독주=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달러 강세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등의 글로벌 금융사들이 전 세계에 투자된 자산을 회수해 움켜쥐고 있는 바람에 세계 외환시장에서 유통되는 달러 양이 확 줄었다.

달러를 대체할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유로·엔 등 주요 선진국 통화들도 요즘은 힘을 못 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달 말 88.49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는 지난달 달러 대비 7.85% 급락하며 약세로 전환했고, 같은 기간 유로화도 1.2% 떨어졌다.

미국에선 금융은 물론 실물경제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재정적자만 1조7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대안 부재가 달러의 독주라는 역설을 낳았다고 말한다. 금융연구원 장민 연구위원은 “그나마 대규모 부양책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는 미국의 여건이 일본·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데다 달러는 기축통화라는 이점까지 더해져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안이 없는 상태라 달러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화증권 정문석 연구원은 “미국이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해 달러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도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이 상황에서 돈이 갈 곳은 달러 외에는 금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부터 살자”=세계 최대 규모의 외환 헤지펀드운용사인 FX컨셉트의 존 테일러 회장은 2일 블룸버그통신에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이 위기에 처하면 ‘우리 동네 사람들과 기업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라며 “국제 금융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온 미국 은행들이 그런 처지에 빠지면 달러는 오르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스티븐 헤스터 최고경영자(CEO)도 “본국에 집중하기 위해 36개국에서 철수하거나 영업을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BNP파리바 한스 레데커 외환전략담당은 “각국 정부가 은행들을 향해 해외 자산을 처분하고 국내 시장에 돈을 풀라는 압력을 높이고 있다”며 “해외 자금 시장에 의존해 온 국가에는 큰 악재”라고 말했다.

이처럼 투자자금 회수가 가속화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꿔야 하는 신흥시장 국가들의 처지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적자금을 받아 국가의 통제를 받는 은행이 많아지면서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RBS도 영국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 박동영 자금부장은 “국내 은행의 단기 차입금 중 유럽계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한다”며 “다급해진 유럽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을 빼 나가는 게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