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이색마을] “냉장고 없어도 살만헌께 살제”
[전라도이색마을] <17> 여수 남면 수항도‘두 집 이야기’
“항아리를 닮았다”수항도‘돈목섬’별칭
더덕·고구마·상추·들깨·수수밭 일궈
허물없는 내외 부부의 연 넘어 이젠 일상
2006년 06월 28일 00시 00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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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선착장으로 바로 대지않고 한바퀴 휘이 돌았다. 배가 워낙 작아 조그마한 너울에도 바닷물이 튀었다.
배를 댔다.
전남 여수시 남면 유송리 수항도. 위에서 바라보면 ‘항아리를 닮았다’해 수항도. 바다를 밑천으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돈목섬’, ‘물목섬’으로 부른다.
남면 소재지가 있는 금오도 대유리에서 직선거리로 1㎞가 안된다. 면적이야 1만6천여평 안팎.
찾아오는 길은 여수가 출발지다. 섬 천국 답게 여수 구항을 빠져나와 남면으로 접어들자, 곳곳의 가두리 양식장, 바닷속 돌을 캐는 바지선들이 군데군데다. 부표도 지천이다. 저멀리 안개에 둘러싸인 섬들. 끼고돌았다. 마치 해협을 통과하는 것 같다. 혹은 아예 산들로 가로막힌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긴다고 하면 설명이 그럴듯할까.
금오도 대소여 배경동 어촌계장의 배에서 내렸다.
내년이면 여든인 곽후방 할머니네로 들어섰다. 한해 농사가 가득하다. 마당에는 마늘과 쑥, 양파가 볕을 쬐고 있다. 깨는 아직 털지않은채로 마루기둥에 기대고 섰다. 덩치 큰 개미는 뭔가를 물고 줄달음을 쳤다. 인기척을 느꼈음이라.
돌아나와 밭을 거슬러 올라갔다. 밭에 곽 할머니가 허리를 펼새도 없이 일에 열중이다. 작물은 갖가지다. 고구마와 취나물, 상추, 수수, 들깨, 여기에 더덕밭이 상당히 크다. 더덕잎을 뚝 끊었더니, 쌉쌀한 향이 코 주위를 맴돌았다.
구릉을 차고 올랐다. 바둑이가 막 달려왔다.
수항도 터줏대감 내외의 수호신인 셈이다. 해산물인‘시모’를 다듬고 있던 황본자(73)할머니와 이도옥(77) 할아버지가 ‘야 이놈 놀부야 설치지 말어라’라고 나무랐다. 바둑이는 이름이 ‘놀부’였다. 하는 짓이 그와같다고 지었다는 게 황 할머니의 귀띔. 놀부가 연신 다리사이를 왔다갔다하면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댔다.
수항도에는 이도옥 할아버지 내외와 곽후방 할머니, ‘놀부’가 산다.
“밥에만 발전기를 틀어 불편이 많다는데 어떻습니까”
“그건 그래 전깃불이 안들어오고 들어온데도 전깃세땜에 불편허고, 냉장고를 못킨께 시원한 물을 마실수 없고, 하여간 불편은 허제”
섬 정상에 있는 소나무 얘기도 나왔다.
“소나무 두개, 저거 비불제”(할머니)
“소나무를 어째 빌라고”(할아버지)
“비불먼 좋겄구먼”(할머니)
“먼 소리여”(할아버지)
조금 심각한 다툼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오산이었다. 내외간 그냥 오가는 얘기였다.
이번엔 어촌계장에게 할아버지의 푸념이 이어졌다.
“뱀 잠 잡어가, 구렝이가 이만쓱해. 도글도글 궁그레, 뱀이 없었는디, 본섬(금오도)에서 히왔는갑다(헤엄쳐 왔는갑다)”
“그런갑소”(어촌계장)
지난 5·31지방선거를 그냥 지나칠수 없어 여쭈었다.
“그나저나 선거는 하셨습니까. 몇번 찍었습니까”
“했제, 0번 00당 찍었지. 2만원 배삯 주고 본섬에서 투표했어”
6남매를 둔 이도옥 할아버지 내외는 서른네살 막둥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이 섬에서 키운 소와 밭농사로 다섯을 여웠다. 365일 쉴틈없이 뼛골이 빠졌다. 그래도 웃음이 넘쳐난다. 뭍에서 온 일행들을 보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이얘기 저얘기 쉬지않는다. 할머니가 두고 볼수 없어 한마디 했다.
“저영감이 오늘따라 왜저리 도신고…”
떠나갈 듯 웃었다. ‘도시다’는 말 때문. 보통 남도(南道)에서도 광주나 목포 등지에서는 전혀 쓰지않는 말이다. 여수와 순천, 특히 섬에서 쓰이는 ‘도시다’혹은 ‘도신다’는 말, ‘도시지 마라’라는 것은 ‘까불지 말고 좀 조신하게 행동해라’라는 것. 이 한마디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부의 연을 넘은지 오래됐음을 단박에 나타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좋아했다.
잔뜩 얻어 먹었다.
안녕히 잘 계시라는 인사에 황본자 할머니는 ‘잘 가시다, 잘 가시다’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도옥 할아버지는 선착장을 대신하는 방파제까지 나와 중국산 모자를 흔들었다. 배는 금오도로 길을 잡았다.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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