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이색마을] “여름 한 철, 솔솔 바람 불어다오”
[전라도이색마을] <15> 담양읍 만성리 부채마을
2006년 06월 14일 00시 00분 입력
|
난향천리(蘭香千里). 설마, 향기가 천리까지 미치겠는가마는, 선비들의 심사가 그랬다. 고즈넉한 누정에 자리를 깔았건, 시냇물이 아래로 흐르는 바위 위 정자에 누웠든 간에 합죽선을 부지불식간에 부쳤을 것이다.
산수화나 사군자가 그려진 것이 대부분. 그중 ‘난향천리’는 지금껏 부채에 널리 그려지거나 쓰여지는 대표적인 난(蘭)과 글이다.
향기를 대신에 바람은 천리가 가깝다. 기어코‘나비효과’를 들지않더라도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바람이 매개 아니던가. 그럼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당연지사 부채. 부채는 사람의 손길에서 오고, 더위를 피하려는 인간의 연약함이 부채질을 거든다. 더위야 말해서 무엇하리. 자연의 일부인걸.
자연은 무심코 돌고, 사람들은 사는 이치가 저마다 어지럽게 얼키고 설키지만 실은 간단하다. 더우면 부채를 들면 그만이다. 사람이 더위를 맞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부채가 여름을 맞고 있다.
전남 담양군 담양읍내. 옛 도심에서 만성교를 넘으면 만성리. 예전에는 ‘완동’이라 불렸다. 부채마을이다. 화려한 명성이야 사그라들고 있지만, 담양 부채골은 이곳이다. 만성리에서 부채를 만드는 곳은 모두 다섯집.
다리건너 두번째집 ‘형제공예’. 팔순노모와 장년인 아들이 전열기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올해 여든다섯인 어머니 노옥순씨와 형제공예 대표인 아들 이영덕(57)씨다.
면 막장갑을 끼고 연신 불에 부챗살을 올려주는 노 할머니.
‘아들허고 일 헌께 좋제~. 이렇게 불에 따끈따끈허니 잡어야 부채가 실해. 안그러믄 금방 부러지고 오래 못가’
이영덕 대표는 전열기구 위 부채를 한개씩 집은뒤 휙 휙, 겉대를 휘어 강도(强度)를 먹인다. 모자가 척척이다. 30년이 넘었다. 묵묵하게 작업을 하다 간혹 웃음만 지을뿐이다. 부채는 ‘인연’이 만들고 있었다.
여름 한철은 담양 만성리 부채가 맡는다.
#그림1중앙#
6월께 만들고 출하되는 만성리 부채는 전년 가을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담양산 대나무가 재료다. 부채용으로 만들기위해 대나무를 고르고 자르고 쪼갠다. 겉대 사이에 들어가는 살은 기계를 동원해 가름한다. 이를 제외하곤 모두 사람 품이 들어간다.
겉대는 바깥에 있어‘변’으로 부른다. 살은 ‘초지’라 한다. 통상 겉대 두개를 포함해 22쇄, 25쇄, 27쇄, 30쇄가 있다. 형제공예가 출하하는 것은 대부분 25쇄다. 부채 크기가 클수록 살수가 많다.
형제공예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종호씨. 올해 예순넷이다. 하루에 보통 600개 이상 만든다. 큰 통나무에 풀을 푼뒤 그위에 부챗살을 톡톡 치면서 풀을 먹인다. 이후 종이를 절묘하게 턱턱턱턱 붙인다. 순식간에 한개를 만들어낸다. 올해는 3만개 가까이 출하할 계획이다.
“지금이야 손이 달려 풀을 사서 쓰지만 예전에는 쌀을 열흘정도 골렸어. 골리다란 말 모르제? 썩힌다는 말이야. 잘 골려서 종이를 입히면 딱이지. 튼튼하고 몇년을 써도 그대로야. 요즘 사람들은 전주가 부채의 고장이니 뭐니 하지만 우리 어렸을적 전주사람들이 이 완동으로 와서 배워 갔어. 어찌된 요량인지 부채의 명성이 전주가 넘어간 꼴이 돼 버렸어. 세월이 변한거지”
이영덕 대표. “중국산이 넘쳐나고 가격대가 맞지않아 생산성이 없어. 우리집이야 모두 담양 대나무로 만들지만 시중에 나도는 모든 부채를 중국산으로 보면 돼. 유난히 희고 밝으면 100% 중국산이여. 이렇게 90도로 확 꺽어도 부러지지 않는 담양 대나무 부채의 특성을 소비자들이 몰라주니 안타깝고, 그래도 부지런히 만들어야지 어떡해”
우성진 기자 usc@



'풍수기행 > 전라도 이색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안 비금도 염전 (0) | 2009.03.16 |
---|---|
세계 최고‘소금창고’ (0) | 2009.03.16 |
축제까지 ‘월등’하다 다음달 29일부터 이틀간 행사 다채 (0) | 2009.03.16 |
복숭아꽃 피는 마을, ‘무릉도원’이 여기 (0) | 2009.03.16 |
“이것들 없인 못살아” 소주 3형제와 굴맹이, 에피소드 (0) | 20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