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몽골 연방통일국가’가 타당한 이유
지난 9월7일 칭기즈 칸과 바람과 초원의 나라 몽골(Mongol)을 갔다. 몽골은 ‘용감함’이란 뜻의 부족 이름이었지만 칭기즈 칸이 몽골 부족을 통일함으로써 민족 이름이 됐다. 중국인이 사용해온 몽고(蒙古)라는 명칭은 중화사상 차원에서 북방민족인 몽골을 몽매한 야만인이라고 경시해 부른 왜곡된 표현이다.
필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등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특히 도서관과 박물관이 많다는 보스턴에서 느낀 것은 같은 아시아인인 중국과 일본의 정체성은 세계인에게 분명하게 인식되어 있는 데 반해, 한국인의 정체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민족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청계천 책방을 뒤져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접한 기억이 있다. 이후 민족의 시원과 정체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했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는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2004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차세대 지도자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였다. 미국의 여러 싱크탱크를 둘러보다 초청자 측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 어느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고민 끝에 이야기의 핵심 줄기로 삼은 게 칭기즈 칸과 활에 대한 것이었다. 코리아는 몽골족인 칭기즈 칸과 역사적으로 형제 또는 사촌형제적인 민족관계라는 것이었다. 고구려 등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올림픽 양궁에서 거의 모든 금메달을 휩쓰는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특성 등도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저런 사색을 하다 보니 어느덧 칭기즈칸 공항과 주변 초원이 눈앞에 다가왔다.
칭기즈 칸과 세종
이번 여행은 한국과 몽골의 고대사 연구학자들이 한국과 몽골 고대사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교류하는 공동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칭기즈 칸과 고구려의 유적이 공존하는 동몽골의 유적탐사에 참여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필자는 고대사 연구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통일전략으로 ‘남·북·몽골 3자 연방국가’ 방안을 주장한 바 있다. 구체적인 추진전략으로 우선 한국과 몽골 간의 FTA와 비자면제협정을 제안했을 뿐 아니라, 이번 세미나에 참석하는 고대사 연구학자 상당수와 친분이 있어 동참하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의 몽골학과 칭기즈 칸 연구의 권위자이며 이번 행사를 이끈 박원길 박사와는 평소 의기투합해온 터라 참가 권유에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의 심정으로 참여한 것이다.
세미나에 앞서 한국몽골학회 초대회장을 지낸 최기호 교수로부터 한국과 몽골 교류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언어학자인 최 교수는 한글과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등을 포괄해 ‘동북아어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분이다. ‘동북아어족’의 언어는 중국어와 비교해 어순도 다르고 자음 모음 구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언어학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1990년 3월26일 한국과 몽골의 국교가 수립됐는데, 그해 7월에 상명대 국어교육학과 최기호 교수는 몽골 동양학연구소의 하이산다이 소장 등과 협의해 동양학연구소에 한국어 강좌를 열었다. 이후 사립 울란바토르 대학이 1993년 한국어학교라는 명칭으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1995년 정식 대학인가 이후에는 한국어학부가 개설되는 등 몽골에서 한글교육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어와 몽골어는 자음·모음 구조가 비슷하고 어순이 같은 까닭에 몽골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빨라 2~3년 공부하면 한글강의를 이해할 정도가 된다고 한다. 특히 한류 바람 때문에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 2004부터 해마다 울란바토르 대학과 울란바토르 시가 공동 주최하는 ‘몽골 한글날 큰잔치’가 열린다고 한다. 한국어 말하기·쓰기대회, 노래대회, 컴퓨터 빨리치기대회 등을 하는데 수천명이 참여할 정도라고 한다.
칭기즈 칸은 세계에서 가장 넓고 거대한 몽골제국을 세웠고, 세종대왕은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글자로 인정받는 한글을 창제했다.
칭기즈 칸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동력이 된 것은 정보통신망의 획기적인 혁신이다. 역참제도를 도입해 세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제국을 경영한 것이다.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haewookoo@hanmail.net
● ‘쥬신’은 몽골-만주-한반도-일본에 이르는 민족집단
●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
● 한·몽골 FTA, 비자면제협정 체결 ‘연방국가’ 첫걸음
● 중국의 ‘동북공정’ ‘북방공정’에 한·몽 공동대응 필요
● 언어구조 비슷해 몽골문자로 한글 채택 가능
● 한·몽골 연방국가, 미국의 긴밀한 협의와 협력이 필수조건
또한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세계에서 정보사회에 가장 알맞은 문자로 컴퓨터 및 휴대전화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정보화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필자와 평소 친분이 있는 ‘디지털네임즈’조관현 사장은 휴대전화 한글 입력방식인 ‘천지인’을 개발하면서 세계 각국 문자를 연구했는데, 한글만큼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적합한 게 없었다고 한다. 한글이 세계 속의 ‘디지털노마드 코리아’를 이끌어가는 핵심동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몽골에는 고유의 말은 있지만 문자는 고대몽골문자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1940년부터 러시아문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몽골어와 더 궁합이 맞는 한글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국과 몽골 간에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차원의 획기적인 협력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대쥬신을 찾아서
세미나에서는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역사왜곡인 ‘동북공정’과 몽골에 대한 역사왜곡인 ‘북방공정’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먼저 우리나라 고대문명 연구가로 수많은 현지 탐사와 고고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해 요하문명론을 주창한 우실하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우 교수는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중화문명탐원공정→동북공정→요하문명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 관련 공정은 단순한 역사공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고대로부터 모두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대(大)중화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중국 국가전략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그 이론적 토대로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서지방 요하문명(遼河文明) 지역이 전설시대부터 중화민족의 조상이라는 황제(黃帝)의 영역이었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논리가 인정된다면 단군, 웅녀, 해모수, 주몽 등 우리의 모든 선조는 ‘황제의 후예’가 되고 동북방의 모든 고대 민족 역사는 중국의 지방정권 역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만주 일대의 요하문명은 중원의 황화문명과는 다른 문명이다. 이 지역에서 보이는 빗살무늬토기와 피라미드식 적석총, 비파형동검, 치(석성에서 돌출하여 쌓은 곳)를 갖춘 석성(石城) 등이 중원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요서-요동-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북방문화 계통이다. 이것은 요하문명의 주인공이 황하문명의 주인공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이며 이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선조라는 것을 우 교수는 밝혀냈다.
다음 발표는 동양고대사 문헌연구에서 독보적인 연구실적을 보여온 김운회 교수가 나섰다. 대쥬신역사론으로 유명한 김 교수는 몽골-만주-한반도-일본에 이르는 민족적 집단의 기원을 탐구했는데 ‘쥬신’이란 코리족(고리족) 즉 코리언, ‘범한국인’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이들은 천손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태양을 숭배하고 금속을 잘 다루는 민족집단으로 지리적으로 보자면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원류인 예맥, 숙신, 동호 등을 검토하고 이들과 말갈, 물길의 관계는 물론 알타이 신화와의 관계 그리고 고구려, 몽골, 백제, 일본, 신라 등 국가 간의 관계를 쥬신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를 통해 몽골-만주-한반도-일본에 이르는 민족집단이 그 기원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원나라를 건국한 몽골 쥬신과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 쥬신, 일본열도 쥬신이 같은 시원을 가진 민족집단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사실을 최근 인종분포 분석에서 활용하고 있는 DNA 검증방식과 문화인류사적 교류사 탐구까지 동원해 검증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대쥬신을 찾아서’는 세계사의 무대에서 우리가 중화민족의 들러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세계사의 주역이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형제의 나라’ ‘어머니의 나라’
마지막으로 몽골과 칭기즈 칸을 연구해온 박원길 박사가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고주몽이 칭기즈 칸의 선조라는 사실을 밝혀내 몽골과 한국의 깊은 역사적 인연을 알린 것이다. 박원길 박사의 스승이자 세계적인 학자인 몽골인 한촐라 교수가 한국에 와서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라고했는데 이는 이 같은 역사인식을 기초로 한 것이라고 한다.
칭기즈 칸의 선조로 알려진 바이칼의 부리야트족은 바이칼 일대를 코리(Khori·고구려)족의 발원지로 보고 있다. 이 부리야트족의 일파가 먼 옛날 동쪽으로 이동해 만주 부여족의 조상이 되었고, 후일 고구려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고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종족이 한국인의 유전인자와 가장 가까운 종족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 북방공정 등 역사적 영토문제 제기는 그 논의가 역사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화될 경우 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치밀한 논리대응이 필요하다고 박원길 박사는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역사적 영역이라 주장하는 몽골과 고구려가 왜 그들의 영역이 아닌지 역사적으로, 학술적으로 반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중국의 역사왜곡에 한국과 몽골이 공동대응할 것을 역설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몽골의 학자들과 그네들의 전통문화를 살려 인테리어를 잘 해놓은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가졌다. 몽골 학자들은 칭기즈 칸이 중국인이라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세계 각국의 문헌을 통해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다며 분개했다. 이들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북방공정은 한 몸통이기 때문에 공동대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측은 동몽골 지역이 몽골과 한국의 고대 역사 및 문화를 밝히는 민족사 탐구의 전략적 지역일 뿐 아니라 양 국가의 미래까지 연관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주장하면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한국과 몽골 학자들의 고대사 세미나의 결과는 동양의 역사가 남북문명 간 대립의 역사였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양역사를 중화문명 중심의 역사로 서술하고, 나머지 역사는 들러리로 만들려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역사관에 정확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일찍이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내용적 근거도 불충분했을 뿐 아니라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정략적 이데올로기에 가까워 보편적 설득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차원의 학문적 성과도 축적됐고, 이념적으로도 패권적 민족주의에 대응하는 객관적, 보편적 진리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인으로부터 설득력을 충분히 획득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3대 굴절사관 박원길 박사는 주자학을 신봉하다가 유불선을 통합한 독자적 사상체계를 세운 양명학의 창시자인 이탁오(李卓吾·15 27~1602) 이야기를 했다. 이탁오가 당시 국가이념화하고 있던 주자학의 폐단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나이 50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고 말했던 연구 자료를 전하면서, 중화주의 사대사관에 빠진 한국의 일부 학계를 성토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필자는 당나라의 고구려 멸망 전략에 동조해 한강 이남을 차지한 신라를 우리 역사의 중심인 양 서술한 김부식은 대표적인 종파주의 사관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리학에 기초한 국가경영이라는 미명하에 중화주의 사대사관에 빠진 조선시대는 우리나라와 대륙의 역사를 더욱 멀어지게 하는, 잃어버린 대륙의 역사 500년이 되게 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등 빛나는 문화유산을 남긴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철학적, 역사학적 측면에서는 분명 중화주의 사대사관에 빠졌다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 기초하여 우리가 청산해야 할 3대 굴절사관은 근대의 일제식민사관과 더불어 김부식의 종파주의 사관과 조선시대의 중화주의 사대사관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3대 굴절사관과 같은 뼈아픈 과거사는 역사의 무덤에 묻어버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이라는 커다란 자산을 기반으로 21세기에는 새로운 미래전략으로 민족사의 새로운 전환과 발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2008년을 ‘선진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근대국가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라는 근대화혁명을 세계사 속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시간에 이루어 모범적인 모델을 만들어낸 우리나라 앞에 새로운 시련과 도전 과제가 놓여 있다. 2008년을 ‘선진화체제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한미 간의 쇠고기협상 파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뒤이어 금강산 총격사건, 독도문제로 북한과 일본에 연달아 강펀치를 맞은 상태다. 그러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지금까지의 타격보다 더욱 심각한 타격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베이징올림픽을 마친 중국이 이후에 본격적으로 진행할 한반도에 대한 공세다. 구체적으로 보면 수년 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해온 동북공정 즉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공정과 최근 본격화되는 백두산공정이다. 동북공정, 백두산공정은 단순한 역사훼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실질적 와해와 ‘북한의 친중국화 공정’이라는 현실정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북한을 중국의 영향권으로 포섭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 전체를 중국에 종속화하는 결과까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울란바토르의 서울거리 ‘선진화 담론’의 맹점은 민족문제에 대한 문제인식과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진화론에서 제시해온 철학인 ‘공동체 자유주의’ 역시 공동체 내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법의 틀이지 공동체 간의 관계인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고 본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조건, 즉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엄중한 조건에서 국가전략 내용을 세우는 데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부족하다면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최근 세계정세에서는 냉전시대의 동맹관계처럼 단순하고 질서 있는 협력관계가 실현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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