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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고문 특별기고] “○○○ 것 같아요”

화이트보스 2009. 3. 22. 12:01

[김대중 고문 특별기고] “○○○ 것 같아요”
말끝마다 ‘같아요’를 붙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을 ‘무엇 무엇 같은 것’으로 비하하게 되고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의 것’으로 치부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스스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려는 의욕을 잃고 그저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한, 흐리멍텅한 사고력을 갖게 될 위험도 있다.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대중 고문

▲ 김대중 고문

요즘 청소년 특히 여성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우리 사회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두 가지를 들고 싶다. 하나는 ‘○○○ 것 같아요’이고 다른 하나는 ‘열심히 하겠습니다’이다. “예쁜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배고픈 것 같아요” “싫은 것 같아요” 등등 자신의 주관적 입장과 생각을 말할 때 거의 접미사 수준으로 따라붙는 것이 ‘○○○ 것 같아요’다. 예쁘면 예쁘고, 싫으면 싫지 왜 예쁜 것 같고 싫은 것 같은지, 이제는 하도 많이 듣고 너무 자주 써먹어서 식상하다 못해 역겨울 때도 많다.

우선 그런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도 그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쓰는 것 같다. (‘같다’는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같아요’라는 말을 쓰느냐고 물으면 대개 “내가 그런 말을 썼어요? 그냥 입에 밴 것 같아요”라고 또 ‘같아요’를 말끝에 붙인다. 별로 의미를 두지 않은 말투고 왜 굳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느냐는 핀잔기도 있다.

그러나 모든 표현 또는 그런 표현의 경향에는 유래가 없을 수 없다. 어문이나 표현을 공부해온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봐서 어떤 사태든 어떤 사물의 관찰의 결과이든 너무 단정적으로 잘라 말하는 것이 각박해 보여 약간의 완충 내지 중간지대를 두기 위해 ‘그런 것 같다’를 쓰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싫다’ ‘좋다’ ‘밝다’ ‘어둡다’ ‘예쁘다’ ‘밉다’ 등의 표현에서 끝을 딱 자르면 여유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싫기는 싫은데 “싫은 것 같다”고 하면 약간 덜 미안할 수 있다. 좋게 보면 상대방에 대한 예의랄까 배려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표현의 심리를 뒤집어보면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관찰에 대한 불확실성, 애매모호성, 자신없음도 깔려있다. 싫은지 좋은지 잘 모를 때, 예쁜지 미운지 확실하지 않을 때,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잘 모를 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싫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내가 좋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경우다. 표현은 오히려 정확한 것인데 이 표현이 정확한 사용처를 떠나 모든 말에 뒤따라 붙는 현상은 우리 청소년의 ‘매사에 자신없음’ ‘무엇에든 불확실한 자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결코 방관할 상황은 아니다.

‘○○○ 것 같다’는 표현은 그 어휘의 적절한 사용처와 상관없이 또는 그 말이 사용되는 경우의 맞고 틀림과 상관없이 우리 청소년의 심리 상태를 매사에 엉거주춤하고 불확실하며 자신 없는 쪽으로 이끌어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말끝마다 ‘같아요’를 붙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인생을 ‘무엇 무엇 같은 것’으로 비하하게 되고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의 것’으로 치부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스스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려는 의욕을 잃고 그저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한, 흐리멍텅한 사고력을 갖게 될 위험성도 있다.

여기에 덧붙여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같아요’의 남발이 ‘구경꾼’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그 어떤 상황의 해석이나 관찰에서 ‘플레이어’가 아니라 구경하는 위치에서 세상을 보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이 또는 젊은 여성들이 세상의 일 즉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현상을 기성세대‘그들만의 리그’로 보고 자기들은 한 발 물러서 관조하는 위치에 서 있음을 이 ‘같아요 문화’는 시사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면피성으로 들린다. “나는 열심히 하겠다. 잘되고 잘못되고는 나의 몫이 아니다. 나는 최선을 다 하기만 했으면 됐지 결과를 가지고 나를 탓하지는 말라”로 들린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젊은이들이 열심히 한다는 것은 ‘기본(基本)’이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 안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느냐’에 있지 않고 ‘잘하느냐’에 있다.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겠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같은 값이면 “잘하겠습니다” 또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말에 성실함도 돋보이고 책임감도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다중 앞에서의 표현력이 부족하다. 남 앞에서 표현하는 용기가 부족한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단어의 구사도 돋보이지 않고 또 한 문장의 시종(始終)이 분명하지도 않다. 주어·목적어·동사·부사의 적절하고 정확한 배열 없이 우물쭈물 얼버무리고 끝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외국의 시사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나와 정확한 단어와 적절한 문장을 앞뒤 똑떨어지게 구사하는 것을 보면 욕과 쌍소리 없이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정도인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생활, 정제되지 않은 마구잡이식 표현이 남발되는 언어습관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더욱 걱정이다.

이것은 교육과 훈련의 부족 때문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적절한 어휘의 사용을 가르치고 표현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가 순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청소년의 언어와 표현이 절제되고 정제됐으면 한다. 그런 방향의 사회운동도 일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