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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기로에 선 건설업

화이트보스 2009. 3. 25. 11:26

생사의 기로에 선 건설업
산업부 차장대우 차학봉 hbch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헌법보다 더 고치기 어렵게 하겠다던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부동산 규제가 줄줄이 풀리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건설업계의 연쇄도산을 우려, 파격적인 규제완화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건설업계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미분양 주택과 토지까지 사주고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여전히 정부에 불만과 요구가 많다. 규제가 풀리고 있지만 미분양주택이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입자금 출처조사 한시적 면제 등 추가 대책과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충분한 대책을 내놓으면 미분양이 해소될 수 있다는 건설업계의 주장은 우물안 개구리식 착각이다.

정부 규제가 없는 미국, 영국, 스페인, 두바이, 일본 등 전세계 집값이 급락하고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경제위기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10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선진국에서도 기업 연쇄부도와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렸고 상당수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반 토막 났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 때문에 주택구입 수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주택 미분양도 정부 대책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침체와 실업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다.

건설업은 GDP 대비 투자비중이 18% 정도로, 전체 경기에 미치는 영향과 고용 효과가 크기 때문에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처절한 자구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건설업계는 정부가 규제만 더 풀면 IMF 외환위기 이후처럼 미분양이 쉽게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외환위기 당시의 주택보급률은 92% 정도였고 미분양 주택도 10만 가구에 그쳤다. 하지만 현재 주택보급률은 108%가 넘었고 미분양주택도 16만5000여 가구나 된다. 특히 미분양 대부분은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지방의 중대형 주택이다. 짓기만 하면 무조건 팔릴 것이라는 '부동산 불패론'에 근거한 방만경영이 자초한 참화이다. 중대형을 실수요가 많은 소형평형으로 변경하고, 분양가를 낮추는 자구노력이 없다면 미분양 해소는 요원하다.

우리 건설업은 구조적으로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선진국의 경우, 건설투자가 GDP 대비 10% 미만이지만 우리는 거의 두배에 가까운 18% 안팎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건설 투자가 줄 수밖에 없다는 것.

일본의 경우, 1994년 94조엔이었던 건설업 전체 매출이 작년에 49조엔대로 반토막 났다. 일본도 불황 초기에 건설부문에 재정 투자를 늘렸지만 고령화로 인해 인구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도로, 주택을 지을 수는 없었다. 한국도 고령화로 인해 인구감소에 들어간 지역이 속출하고 있고 지금도 국도와 고속도로가 이중으로 뚫려 있는 지역이 많다. 4대강 정비 사업 외에 마땅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찾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자동차, 전자 업종 등은 IMF 외환위기 당시 철저한 구조조정을 거쳐 10년 만에 맞은 더 큰 위기에서 우리 경제의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건설업이 국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데 대해 건설업계는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한다. 정부에 불평만 하다가 몰락해 갈 것인가,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통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가. 건설업계는 생사가 걸린 선택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