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전라도 이색마을

곳곳마다 배어있는 역사의 흔적

화이트보스 2009. 3. 31. 11:00

[전라도이색마을]곳곳마다 배어있는 역사의 흔적

두채만 남은 아흔아홉칸집‘자취만’
비석 등 금석문 산재… 옛 영화 방증
백성들 어질어 목민관 공덕비 수십개


2006년 04월 12일 00시 00분 입력




수령 200년은 족히 됨직한 팽나무가 S자로 힘있게 자신을 말았다. 하늘로 곧장 내닫기가 부끄러웠을까. 한번 두번 비틀었다. 비틀었어도 꼿꼿함이 전해올 정도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1구 입구. 개천을 따라 조금 거슬러 올라갔다.

‘보호수’팽나무가 한 그루 또 있다. 수령 350년을 인정한 표지판이 있다. 높이 20m, 둘레 7m. 지난 2002년 6월 지정됐다. 여름이 오면 녹음이 엄청날 것이다. 남정리가 품고 있던 민초들의 삶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조그마한 개천다리를 건넜다. 주(朱)씨 성 문패의 집들이 눈에 띈다.

돌담이 워낙 오래돼 황토로 바르고 보수했다.

양해를 얻어 들어갔다. 힘을 꽤나 줬더니 그때서야 삐~이걱, 대문이 열렸다.

정원이 넓다. 세월을 겪은 주춧돌, 그위에 기둥, 대청마루, 그리고 안채와 팔작지붕이 새삼스럽다.

정원에는 향나무와 동백나무가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냈다. 태산목이 우뚝 섰고 철쭉이 이를 둘러쌌다. 참나무에 표고버섯이 눈에 띄었다. 감나무도 두어 그루 있다.

#그림1중앙#

아흔아홉칸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정리에는 두채가 있으나 두채 모두 서너칸씩만 남아있을 뿐이다.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마리가 짖자 근동의 ‘동무’들이 이때다 싶어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들이 그만큼 집을 많이 비웠다는 것일 게다.

이 집도 주씨네다. 대문으로 들어서는 길에 와편이 깔려 있다. 산산히 깨져 있다. 비가 제법 왔는데 그대로 흡수한 모양이다. 부서진 와편을 밟는 느낌이 색다르다.

집 문간채가 대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있다. 네칸짜리 안채가 깔끔하다.

큰 돌을 직접 파서 만든 돌 절구통이 널브러져 있고 댓돌들은 가지런하다. 신발 한켤레가 놓여있다. 뒤안으로 돌아갔다. 텃새들이 쪼르르 쪼르르 노래를 불렀다. 발자국에 퍼러럭 날았다. 감나무가 서너그루. 대나무로 얼기설기 울타리를 짰다. 대문 주위는 돌담으로, 옆과 뒤는 그냥 테두리만 두른 형국이다.

#그림2중앙#

골목과 골목은 대부분 돌담길이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능주향교를 둔 마을답게 군데군데 기와집들이 있다.

남정리에서 나고 자란 향토사학자인 오정섭(80)옹.

“화순과 동복은 현감고을이었고 능주는 현령고을이었습니다. 현감이 종6품이고 현령이 종5품 벼슬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능주의 위세를 알수 있습니다. 물론 능주가 한천과 춘양, 이양, 청풍, 도곡, 도암 등을 합쳐 목사고을로 불리지만 명칭에서 알수 있듯 이곳은 예로부터 충과 예, 인을 중요시하고 민심을 제대로 읽는 목민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곳 중 하나입니다. 더불어 백성들 또한 순하고 어질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 인심좋은 고을입니다.”

오 옹은 이어 “지금에야 많이 쇠락했지만 마을을 한바퀴씩 돌때마다 옛 영화를 떠올리고 곳곳에 있는 금석문이나 비문들을 살펴보곤 한다”면서 “좀 더 많은 기록을 발굴하고 이곳의 역사와 유래를 좀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오 옹과 함께 능주향교로 향했다.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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