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기행/전라도 이색마을

정암 조광조

화이트보스 2009. 3. 31. 11:04

[전라도이색마을]정암 조광조


2006년 04월 12일 00시 00분 입력


[전라도이색마을]정암 조광조

정암 조광조적려유허비.
정암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의 폐정을 개혁하다가 훈구파의 모함을 받아 중종 14년(1519년)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됐다. 이후 한달만에 사약을 받고 이곳서 죽음을 당했다. 이후 현종 8년(1667년) 당시 능주 목사 민여로가 우암 송시열의 글을 받아 정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사 현장에 조성된 유허비다.
정암의 개혁은 중종반정 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홍경주·남곤·심정 등에 의해 당파를 조직해 조정을 문란하게 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벌레가 ‘조광조가 왕이 될 것(走肖爲王)’이라는 문구를 파먹은 나뭇잎이 임금에게 바쳐지기도 했다. 결국 사림파의 과격한 언행과 정책에 염증을 느낀 중종의 지지를 업은 훈구파가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는 기묘사화를 일으킴에 따라 능주에 유배됐다가 결국 사사됐다. 그러나 후일 사림파의 승리에 따라 선조 초에 신원돼 영의정이 추증되고, 문묘에 종사됐으며, 전국의 많은 서원과 사당에 제향됐다.
길가에서 바로 건물로 들어가 왼쪽 쪽문으로 가면 적려유허 비각이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이뤄졌다. 비석은 3m 정도 목책으로 둘러 싸여 있다. 거북이 형상의 바위가 비석을 받치고 있다.
‘정암조선생적(靜菴趙先生謫) 려유허추모비(慮遺墟追慕卑)’란 열두자의 해서체 글씨가 세로 두줄로 새겨져 있다.
비각 뒤에는 화순군이 최근 세운 ‘정암 조광조 적려 유허추모비 번역문’이 안내판 형식으로 서있다.
글 말미.
‘…세월이 오래되면 그 유허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그곳에 비를 세워 영원토록 잊지 아니하고자 하니 옛날 정부자께서 영락정에 대한 글을 지으시면서 물은 차마 이를 폐할수 없고 땅은 차마 이를 버리지 못한다고 하니 아! 이글을 이 비에 새김이 합당할지로다.…송시열은 비문을 짓고…송준길은 비문을 쓰고…민유중은 전서를 쓰다.’
지금은 학자나 학생들의 필수 견학코스로 전국에 이름이 높다.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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