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이색마을]정신·신체 장애는 한낱 티끌일뿐…
<5>장애인 복지세상 화순 호산마을
‘생산불교’기치 예불도 함께 일도 함께
‘지장전’등 조성, 마을 운영비 등 충당
2006년 04월 05일 00시 00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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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중국 당나라 고승 백장청규(百丈淸規)스님의 가르침이다. 백장은 일도 수행의 연장, 더 나아가 일과 참선을 하나로 봤다. 백장이 일을 중요하게 여긴 까닭은 일은 무시한 채 앉아있기만 하면 참선이 되는 것으로 여기는 수행자들에 대한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그림1중앙#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호산마을이 이 가르침에 따르고 있다. 심한 노동을 하진 않지만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따라 심신을 행하고 있다.
우선 부처님 앞에서 아침과 점심, 저녁 하루 세차례 예불을 올린다. 예불의 생활화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다진다. 광주 남구 제석산 대각사 도산스님과 공양주 아주머니를 제외한 8명이 모두 정신과 신체 장애를 앓고 있어 더욱 정진한다. 호산마을은 대각사의 사회복지시설이자 장애인 복지쉼터다.
94년 호산마을을 ‘쉼터’로 개척한 대각사 주지 도산스님은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밭에서 땀을 흘리고 밥을 먹고 나름의 정제된 생활을 통해서만이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고 행동까지 올바르게 된다는 것이다.
한쪽 팔이 없는 해봉처사도 예외는 아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인다. 점심 예불을 마쳤다.
햇살은 따갑고 봄바람이 살랑 분 이날도 함부로 버려진 나무들을 한손으로 어렵사리 끌어모았다. 태웠다. 이쪽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齒)가 몇개 없다. 또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림2중앙#
눈이 유난히 크고 키 작은 달봉거사(별명)도 힘을 보탰다. 해봉처사보다 ‘형님뻘’로 짐작됐다. 짜자작 쓰레기가 잘도 탄다.
자폐를 앓고 있는 ‘영리한 상좌승’(별명)도 스님의 말씀에 또박또박 응대하며 척척 심부름을 했다.
도산스님과 이들은 부도탑과 가족 납골묘 주위를 다시 한번 돌며 청소를 한다. 낙엽을 줍고 태웠다.
도산스님은 ‘생산불교’를 실천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호산마을 빈 터에 납골당인 ‘지장전’을 지을 계획이다. 지금도 몇개의 납골묘가 있지만 이를 확장하려 한다. 불자는 물론 불심을 가진 일반인들의 ‘사후’를 평안하게 모시는 것이다. 이를 몇십년 관리하고, 이 비용으로 장애인들이 삶을 살고 호산마을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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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도 가꾸고 있다. 호산마을에서 간단히 길러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들깨와 배추, 상추, 무 따위다. 지체장애가 있을지라도 자꾸 움직여야 건강해진다.
지금까지 호산마을을 거쳐간 이들은 줄잡아 70여명.
이름만 대면 금세 알수 있는 중견기업 대표도 호산마을에서 기력을 회복했다. 이 기업 대표는 부인을 암으로 사별하고 스포츠 관련 사업으로 재산 대부분을 없앤 아들 때문에 끝모를 우울증에 빠졌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중증이었다. 3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함께 일하고, 이들과 함께 쉬고, 함께 재미있게 놀았다. 일터와 쉼터와 놀이터, 이 세가지를 언제나 동일시했다. 체육관 운영이 어려워 술로 날을 지새던 제자도 최근 호산마을에서 며칠 묵었다. 호산마을 건너에 있는 안심산을 바라보고 하루를 열고 또 하루를 열었다. 일주일여가 지나자 정신이 온전해졌다. 하산했다.
도산스님은 ‘가난은 남과 서로 나누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인색’과 동일어라고 했다. ‘부자는 떳떳한 돈을 벌어 정승처럼 쓰는 이’라고 말했다.
#그림4오른쪽#
함께 나누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사람의 길이라고 했다.
스님은 혹 힘들면 ‘찾아오라’했다. 화순/김영균 기자 kyk@
우성진 기자 u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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