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도시 공존의 현장을 가다]<2> 美 샌안토니오 리버워크
지난달 24일 오후 샌안토니오 리버워크 모습이다. 도심을 흐르는 물길 위로 작은 유람선이 떠 가고, 강 양쪽에는 관광객과 산책 나온 시민들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찻길보다 한 층 아래 조성된 강변 산책로는 카페 식당 호텔 등과 연결되고, 곳곳에 지상 및 강 건너편과 연결되는 계단, 다리가 있다. 샌안토니오=이기홍 특파원 |
《오전 내내 봄비가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정오가 되자 제나 소만턴 씨(35)는 여지없이 사무실을 나선다. 오늘도 옆자리 동료 2명과 함께이다.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시의 한복판에 있는 스위스계 융자회사 직원인 제나 씨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일과인 ‘강(江)과의 호흡’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사무실 앞 2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빌딩 사이사이로 난 작은 계단 입구가 여러 개 보인다. 계단에 접어들자마자 도시 풍경은 전혀 다른 화폭으로 바뀐다. 찻길 한층 아래에 강과 산책로, 우거진 나무들이 어우러진 별천지가 펼쳐진다. ‘지붕 없는 지하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폭 8∼10m의 강이 흐르고 양 옆엔 산책로가 이어진다. 》
도심 둘러싼 수로따라 먹을거리 볼거리 가득
툭하면 범람 골칫덩이
관광객 年 2000만명
고용 10만 효자로 변신
식사를 마친 제나 씨는 강변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카페, 호텔 등이 많은 구간을 벗어나자 길은 호젓해진다. 가는 비가 내리지만 빌딩 3∼5층 높이까지 뻗어 자란 무성한 나무들이 쉼 없이 이어져 거의 젖지 않는다. 돌을 깎아 만든 길은 그다지 미끄럽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면 지상 층엔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고 높은 빌딩이 가득하므로 여기가 미국에서 7번째 큰 도시의 한복판인 건 분명한데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운타운을 고리 모양으로 감싸고도는 강변길을 다 돌려면 8km가량을 걸어야 한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인 제나 씨는 산책길 곳곳에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건너 코스를 단축한다.
시카고에서 대학을 마치고 10년 전 샌안토니오로 왔다는 제나 씨는 “오늘 저녁에 연극 동호회 모임도 ‘리버워크(River Walk·강변길)’의 카페에서 열린다. 밤늦은 시간까지 강가의 호젓함과 관광지의 활력이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다들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리버워크 없는 샌안토니오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버워크는 도시의 골칫덩이가 효자로 탈바꿈한 대표적 성공사례다. 총길이 384km의 샌안토니오 강은 텍사스인의 젖줄이지만 툭하면 범람했다. 1921년 대홍수로 지상 2.7m나 범람한 강물이 인근 거리를 덮쳤고 50명가량이 숨졌다. 도심 구간을 복개해버리자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됐다. 하지만 건축가 로버트 허그먼이 범람을 막는 동시에 도심의 미적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주도했다.
1937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돼 댐, 수로와 더불어 산책로, 다양한 모양의 작은 다리들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1960년대 들어선 10년 단위의 다단계 종합 개발계획 아래 상업시설과 문화시설들을 강 주변으로 끌어 모았다. 강이 도심 구간에서 고리처럼 한 바퀴 돌아 나가는 형태로 물길이 만들어졌다. 그 물길을 따라 존 웨인 주연 영화로도 유명한 ‘알라모’ 유적을 비롯한 도심 기념물, 박물관, 극장 등이 연결된다.
1980년대 들어 고급 호텔과 컨벤션센터 등도 속속 들어섰다. 개발 프로젝트 진행은 강변개발국(SARA·San Antonio River Authority)이 주도하고, 지역 상공인, 주민들은 ‘파세오 델 리오(리버워크란 뜻의 스페인어) 연합회’를 결성해 리버워크에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창출해 왔다. ‘강물 녹색으로 염색하기’ ‘루미나리에 축제’와 퍼레이드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연중 열린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안건혁 교수는 “샌안토니오는 물의 보존적 이용의 모범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도시를 관통하는 20km 구간의 물을 그대로 바다로 내려 보내는 게 아니라 100% 재순환시킨다. 지하 20m 깊이에 지름 1.5m 관망을 형성해서 홍수가 나면 물을 담아두고, 가물 때는 뽑아 올려준다. 덕분에 연중 유람선이 다닐 수 있는 평균 1.5m의 수심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 리버워크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샌안토니오의 관광산업은 2006년 기준 105억 달러 규모로 바이오테크놀로지, 군사기지와 더불어 도시 3대 산업 중 하나다. 인구 132만 도시에서 관광산업이 창출한 일자리가 무려 10만 개에 달한다. 걸핏하면 범람하고 주변을 우범지대로 만들었던 물길이 도심의 휴식과 소비, 관광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뀌면서 한 해 2000만 명의 관광객이 도시를 찾게 만드는 ‘꿀물이 흐르는 강’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샌안토니오=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자연보존 위해 청소할때 세제사용도 금지”▼
케빈 도너휴 리버워크 연합회 총재
‘파세오 델 리오 연합회’의 케빈 도너휴 총재(사진)는 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리버워크는 강의 보존과 활용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를 보여준 성공사례로 미국 내 여러 도시의 전범(典範)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연합회는 리버워크 보존 및 관광자원 개발을 위해 상공인과 시민들이 1968년 결성한 단체로 당국과 협력해 연중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을 비롯해 운하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도시는 여러 곳 있다. 그곳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포트로더데일을 비롯한 대부분 운하도시가 샌안토니오를 벤치마킹했다. 우리가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1920년대에 거의 복개돼 사라질 뻔했던 하천을 수세대에 걸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탈바꿈시켰다는 점이다.”
―물길과 소비, 상업시설이 연결돼 있는데, 처음부터 계획한 건가.
“1930년대 물길의 보존을 바랐던 사람들과 시장(市長)이 당시 대세였던 복개 주장을 이겨내고 개발에 착수했을 때는 레스토랑 1개와 클럽 1개가 전부였다. 범람이 멈추자 상업시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형태로 차근차근 개발이 진행됐다. 건물들은 지하층이 물길과 연결되도록 디자인됐다. 상당수는 그전부터 있던 오래된 건물인데 리모델링하면서 물길과 연결했다.”
―자연환경 보존 및 관리가 쉽지 않았을 텐데….
“리버워크는 관광상품이기 이전에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도심의 대표적 공원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수시로 강변에 내려와서 산책하고 이벤트를 즐긴다. 대도시를 떠나 교외로 나가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도심의 공동화를 막는 효과도 발생했다. 이를 위해 가장 신경 쓰는 일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며 청소도 마찬가지다. 물길 주변 가게들은 바닥 청소 때 세제도 못 쓴다. 조례가 엄격하다. 야외에다 앰프를 놓고 음악을 틀어서도 안 된다. 건물 설계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리버워크 개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시 당국은 현재 8km가량인 리버워크를 북쪽으로 13km, 남쪽으로 6km가량 더 늘리는 공사를 2012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샌안토니오=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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