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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북한의 삼일절

화이트보스 2009. 4. 18. 18:46

100>북한의 삼일절
반외세 투쟁선동·내부결속 기회 삼아

북한이 3월 1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3·1절 90돌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3·1절 기념식은 1999년 80돌 기념행사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3·1절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독립을 위해 궐기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기념행사에서 한국·미국·일본에 대해 “징벌과 값비싼 대가”를 호언하면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남한에 대해 외세 결탁, 동족 대결, 반민족적 역적 패당, 무자비한 징벌 등의 호전적 용어로 협박했다. 미국에 대해서 “시대착오적 반공화국 책동과 북침 전쟁 책동을 중지”할 것과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반공화국과 반조총련, 재침 책동을 중지하라”고 했다. 3·1운동을 핑계 삼아 반외세 투쟁을 선동하면서 내부 결속에 나선 듯하다.

그러면서 “인민대중이 민족적 독립과 사회적 진보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자면 반드시 탁월한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하며, 민족 자체의 역량을 튼튼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3·1절을 김일성과 김정일의 영도력과 연결시켜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언급조차 하지 않다가 99년 펴낸 ‘조선 대백과사전’에서 처음으로 소개했다.

“1919년 3·1 인민봉기 때 일제에 대항해 용감하게 싸운 여학생”이라는 설명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군 목천면에서 출생한 그녀가 16세의 나이로 반일(反日) 시위에 참가했고, 그 이후 반일 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옥사한 사실 등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 대백과사전은 유관순보다 김일성의 3·1절 관련 내용을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유관순 열사를 잘 알지 못한다. 물론 교과서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지도자 33인도 일제에게 민족의 독립을 구걸한 나약한 부르주아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평양의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이 3·1 반일 시위를 주도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혁명의 씨앗을 뿌리고 반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조성해 놓은 평양 숭실학교의 학생들이 주동이 돼 반일 시위가 촉발됐다고 말한다. 김형직은 평양 숭실학교를 중퇴한 이력은 있지만 그와 3·1운동을 연결시킬 아무런 근거나 자료가 없다. 그럼에도 그에게 3·1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민족지도자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를 날조하고 우상화 놀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1919년 3월 1일 반일 독립만세 시위의 첫 봉화가 타오른 곳도 서울의 파고다공원이 아니라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북한이 ‘반일 인민봉기일’로 부르는 3·1운동은 “수령(김일성)의 영도가 없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10년 만에 3·1절을 기념하고 3·1운동을 강조하는 데에는 최근 한반도 정세와 무관하지 않다. 한마디로 국면 전환을 위한 정치적 사술이다. 북한 내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반미(反美)와 대남 공세를 반외세 대결 책동으로 몰고 가면서 체제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대미 관계 개선과 남한의 대북정책 전환을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하고 있는 정치적 노림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