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남자라면 청춘을 바쳐 군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사회주의 조국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 ) 을 보위해야 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남학생은 중학교(우리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에 입대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했다. 중학교 졸업반 남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90% 이상이 ‘군인’을 선택할 만큼 선호했다.
신체 조건과 대학 입학으로 군에 입대하지 못하는 남학생은 ‘문제아나 바보’ 취급을 받았다. 90년대 말에 군내 부조리인 고위층 자제의 군 보직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면서 군의 나쁜 이미지가 주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고위층 자제는 연줄에 의해 적당히 군 복무하다가 노동당에 입당하거나 만기 제대 전에 평양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노동자·농민의 아들, 즉 서민의 자식은 제일 어렵고 힘든 북(北) 강원도 휴전선 일대의 1·2·5군단에 주로 배치됐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전방 오지에서 이들이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영양실조로 귀가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급기야 서민층 부모들은 반발성 신서편지(탄원서)를 여러 차례 중앙당에 접수시켰다.
심지어 어떤 부모는 “아들 둘 중에 한 명은 1군단에 입대했다가 사망했고, 둘째아들마저 5군단에서 영양실조에 걸려 집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북한군은 영양실조가 심한 병사의 경우 부대에서 조치가 불가능하면 집으로 귀가시켜 3~6개월 요양 후 복귀시키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김정일은 인민무력부 대열 보충국에 대해 강도 높게 당 검열을 실시해 간부 자제들을 소위 괜찮은 부대(?)로 빼돌린 군관들을 철직 또는 제대시켰다. 비정상적으로 보직된 간부 자제들은 원래의 부대로 돌려보내는 조치를 취했다. 그럼에도 아들을 둔 부모들은 군에 보낸 자식이 단련되기는커녕 죽지 않으면 몸이 쇠약해져 병에 걸린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구실을 만든다. 한편으로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장사를 선호하는 풍조가 일면서 군 입대를 기피하기도 한다. 돈이나 뇌물을 주고 신체검사 불합격자로 꾸며 입영 대상에서 빠지기도 한다.
병역 기피 현상이 확산되자 북한군은 신체검사 미달 자격을 대폭 완화해 몸무게나 키가 작아도 합격할 수 있게 했고, 출신 성분도 거의 제한하지 않는다. 병역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한 북한 당국의 고육지책이 2003년부터 시행한 ‘전민군사복무제’다. 군생활을 13년에서 10년으로 줄이는 대신 누구나 군 복무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위 간부 자제는 군사 복무보다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직통생’이 대부분이다.
중학교 졸업생 중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약 10% 정도다. ‘직통생’이 되려면 출신 성분이 확실하고 성적도 매우 우수해야 한다. 대학에 진학하는 또 다른 방법은 중학교 졸업 후 2~5년간 직장생활을 하거나 5~7년 이상 군 복무하고 나서 추천받는 것이다. 이들은 군에 입대하더라도 이른바 북한군에서 괜찮은 부대로 불리는 평양의 호위사령부나 국경경비대에 배치된다.
군에서조차 출신 성분에 대한 차별과 10년 동안 장기 복무로 인해 지금의 북한 젊은이들은 군을 선호하지 않는다. 최근 탈북자 중 군 출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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