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석제·소설가
2012년 5월 12일 소설가 성석제가 미리 가본 여수엑스포
유비쿼터스 엑스포 실현… 영상터널·안내로봇 등이 쉴새 없이 정보 제공하고
이글루터널·인공해변에서 자연 체험할 수 있게 해
2012년 5월 12일, 서울에서 KTX 열차를 타고서 3시간18분 만에 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역사를 나서는 순간 녹색과 '푸르름'의 파시(波市)를 만난다. 태평양에서 오동도를 지나 뭍으로 불어드는 바람에도 녹색 물이 든 듯 싱그럽다. 박람회라고 하면 상자처럼 모난 거대한 건물들, 번쩍거리는 전광판이며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이 복잡한 거리와 인파를 연상해온 내겐 낯선 광경이다.박람회장의 주도로인 엑스포디지털가로에 선다. 길 가운데로 사람들을 가득 태운 무가선 트램(전차)이 천천히 미끄러져 가고 양쪽 벽에서는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화면이 화려하게 명멸한다. 깨끗하다. 산뜻하다. 쾌적하다.
여수세계박람회가 이제까지의 박람회와 구별되는 건 첨단기술을 통한 유비쿼터스 엑스포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박람회장 도처에서 관객들의 개인 통신기기나 화면, 음성으로 박람회에 관련된 실시간 정보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제공된다. 날씨와 오늘의 주요 공연, 호텔 객실 유무, 기차와 버스 시간 등등에서부터 어디 가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갓김치를 먹을 수 있는가 하는 것까지.
박람회의 핵심은 전시이므로 내 발길은 자연스럽게 전시관으로 향한다. 세계 100개국이 참가한 국가관을 시작으로 국제기구NGO관, 한국관, 기업관 등의 전시관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전시관의 사령탑에 해당하는 주제관은 여수세계박람회의 주제인 '살아 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에 걸맞게 바다에 세워졌다. 바다가 지구 표면의 70퍼센트를 차지하므로 우주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은 지구(地球)가 아닌 수구(水球)이다. 주제관은 생명의 원천이자 근간인 바다에 대한 찬미와 탐구를, 한국의 강점인 정보통신 기술에 전시·조경·건축의 미학을 더한 첨단 영상으로 보여준다.
세분된 부제에 따라 해양생물관, 기후환경관, 해양산업기술관, 해양문명관, 해양도시관, 해양예술관의 전시관이 열주처럼 늘어섰다. 생명의 시원이자 미래의 생활터전이 될 바다와 인간이 만나 빚어낸 역사, 문명과 예술, 산업기술,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바다의 사이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으니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정복욕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오염되었다. 재해와 재난이 잇달았다. 인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냈다. 아니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과정, 문제가 해결된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첨단기술, 방법론이 총동원된다.
- ▲ 여수 신항에서 문을 열 박람회장 투시도. 다도해공원의 수변광장과 주요 전시시설이다. /여수엑스포 조직위 제공
특히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여 몸으로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한 게 눈에 띈다. 이를테면 남극을 경험하게 하는 이글루터널은 더운 날씨에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다. 바닥에는 진짜 갯벌이 있고 그 위를 새우가 천천히 헤엄쳐 지나다닌다. LED 전광판 벽으로 이루어진 워터 플래닛에 입장하면 벽이 바다로 변하면서 해양동물들이 유영하기 시작한다. 동작 인식장치를 통해 그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관람객이 소설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이 되어 고래를 찾아나서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터치스크린으로 항해 도중에 영화를 보는가 하면 카리브해에서 해적끼리 전투를 벌이는 걸 남의 일이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본다. 심해 탐사선을 축소한 부스에서 로봇 팔로 광물을 채취한다. 손으로 파도를 일으키고 그 파도의 힘으로 발전을 해서 전구를 켜볼 수 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예술과 매체의 형식이 관람객에게 말을 건다. 회화, 사진, 그래픽아트, 조각, 설치, 유무선통신, 가상현실, 증강현실, 영상터널, 홀로그램, 실물복제, 멀티프로젝터, 360도 스피어영상, 안내로봇 등등이 쉴새 없이 정보와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머리 아프게 공부를 하라는 게 아니라, 면벽수도로 도를 깨치라는 게 아니라, 그저 걷다 멈추고 눈길을 내고 소리의 길을 따라 들려오는 말을 들으면 된다.
'탄소배출 최소화'를 지향하는 여수세계박람회에서는 소요되는 에너지를 에너지파크에서 생산된 태양광 에너지에 외부에서 생산된 조력·파력·해상 풍력 등의 청정·친환경에너지로 전량을 충당한다. 박람회장 내에서는 탄소치로 환산된 화폐가 통용되고 개인의 탄소 소비량을 측정하는 탄소 발자국(carbonfoot-print) 행사가 열린다.
- ▲ 세계 각지에서 관람객들이 찾아올 박람회장 조감도. /여수엑스포 조직위 제공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연안은 다도해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다도해 공원은 남해의 다도해를 1000분의 1로 축소해 놓았고 관람객이 직접 바다를 만날 수 있도록 모래사장, 습지, 인공해변 등이 조성되어 있다. 관람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는 해양생태 체험을 하게 하는 학습공간이다. 오감이 즐거운 모양으로 깔깔깔 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풍선이 터지는 듯하다.
다도해 공원과 수변데크를 통해 연결되는 빅오(Big-O)는 여수세계박람회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공간이다. 기존에 있던 여수 신항의 파제제를 활용하여 육역과 양 끝단을 연결, 알파벳 'O' 자 형태를 이루게 했다. 내부에 있는 오션타워, 바닷길(Sea Walk)은 바다에 조성되는 인공생태계로 박람회 중에는 살아 움직이는 교실이자 해양실험실로 기능하고 박람회 후에는 해양과 연안에 대한 다목적 연구와 전시, 실험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석 달 동안 열릴 박람회에 올 국내외 관람객은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관람객은 전시관과 다도해 공원, '빅오'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목적공연장, 야외공연장, 수변광장, 해상공연장이며 그 외의 열린 공간에서 쉬지 않고 열리는 공식행사, 공연, 뮤지컬, 음악회, 무용, 전시회, 민속놀이, 심포지엄, 영화제에 참여한다. 지리산, 한려수도, 남해, 순천만, 여자만, 나로도우주센터 등 주변의 관광지와 해수욕장으로 연계되는 교통편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다. 3년 전, 내가 여수에 처음 왔을 때 박람회장 주변은 한적한 느낌마저 드는 항구였다. 국제박람회사무국(BIE)이 허용하는 25만㎡의 전시시설을 포함, 174만㎡의 부지에 빼곡하게, 램프의 요정이 하룻밤 새 궁전을 가져다 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2009년 4월 하순에 만난 여수시 세계박람회지원단의 염씨 성의 민간협력담당관은 여수 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내가 여수에서 맨 처음 가보아야 할 곳으로 율촌면 산수리의 왕바위재를 정해 놓았다. 아무리 운전대 잡은 사람 마음대로라고는 해도 3년 뒤 개막할 여수세계박람회가 어떤 것인지,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간 사람을 왜 뜬금없이 그곳에 데려갔을까.
거기에 왕바위가 있었다. 가로 8.6m, 세로 5.8m, 높이 2.1m로 세계 최대 규모의 고인돌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장정 3000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청동기시대의 유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문(人文)의 유골.
이어서 2012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릴 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나를 데려간 염 담당관은 막힘 없이 시설이 들어설 장소와 규모,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88 올림픽, 93 대전세계박람회, 2002 월드컵 이후 한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국제행사이자 이를 계기로 남해안 지역발전의 거점이 확보되고 국내외적으로 해양산업과 해양과학 기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라는 게 요점이었다.
"다 좋은 말씀이긴 한데 그 많은 일을 지금부터 해서 어떻게 다 하려고 합니까?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10년씩 준비하지 않았어요?"
염 담당관은 길이 있을 거라고 여유 있게 대답했다. 단단히 믿는 데가 있는 것 같았다.
과거의 박람회는 산업과 기술의 전시장이고 경제적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대 역할을 했다. 이럴 경우 주체는 국가와 기업이 된다. 인구 30만의 '지역공동체' 여수는 치열한 유치경쟁 중에 국가와 기업은 물론이고 누구보다 시민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삶과 숨결이 스민 새로운 패러다임의 박람회를 만들겠다는 논리로 선정위원들을 설득했고 성공했다.
지금 세상의 모든 길이 여수로 온다. 말 없는 왕바위가 몇 천 년 뒤 여전히 존재할 곳으로 길의 무수한 실뿌리가 부드럽게 뻗어온다. 수억의 눈길, 발길, 손길이 여수에 닿아 문명의 빛을 역사에 새기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보고 있다. 서늘한 바다의 미풍을 허파에 머금고, 나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