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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싣고 달리는 인천공항철도… 책임질 사람도 자료도 없다

화이트보스 2009. 5. 17. 12:47

세금 싣고 달리는 인천공항철도… 책임질 사람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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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13 03:14 / 수정 : 2009.05.13 07:29

2001년 계약 당사자인 건교부·철도청·협상단 저마다 "네 탓이오"
2년여 끈 협상 보고서 만들었는지도 의문

누가 인천국제공항철도를 '세금 블랙홀'로 만들었나. 향후 30년간 매일 12억6300만원씩 총 13조8000억원의 정부 보조금이 투입될 이 사태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정상이지만 관련 당사자들은 저마다 발을 빼고 있다.

공항철도의 예상 승객 수가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정황들이 정부 문서와 각종 용역 보고서로 확인됐음에도 당시 책임질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책임도 없고 (사태의 진실을 알려줄) 자료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들로선 영문도 모른 채 '대형 사고'의 뒷감당을 해야 할 처지다.

일은 저질렀어도 책임은 못 진다?

12일 국토해양부코레일 등에 따르면 2001년 3월 공항철도 건설 계약이 체결되기까지 세 그룹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건설 주도의 민간 컨소시엄과 계약을 체결한 철도청(현 코레일)과 ▲상급 부처인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각계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 협상단'이다.

국토부측은 "결과적으로 수요 예측이 잘못돼 철도 승객 수가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출입국 여객을 환송·배웅하는 방문객 수를 여객 1인당 1.1인 이상으로 잡아 방문객 인원이 3~5배 과장됐고, 계약 체결 전에 이미 공항 리무진 노선을 운행하기로 결정했으면서도 계약을 체결할 때는 '리무진 운행' 변수를 제외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관련 자료가 없고, 워낙 오래전 일이라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고 했다. 당시 건교부 장관은 묘하게도 김윤기 현 인천국제공항철도㈜ 사장이다. 김 사장은 계약 체결(2001년 3월 23일) 이틀 뒤 장관직을 떠났고, 3년 후부터 인천국제공항철도 사장을 맡고 있다. 본지는 김 사장측에 당시 상황을 취재하려 시도했으나 김 사장은 측근을 통해 "지금 시점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공항철도 계약과 관련한 실무는 당시 건교부 신공항건설기획단에서 맡았다. 이 기획단의 여형구 당시 선임과장(미국 연수 중)은 "기획단에서 계약 내용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없다. 철도청이 주무 기관이었고, 주된 역할은 철도청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정부 협상단'이 다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철도청은 2001년 3월 계약서에 정부 대표로 도장을 찍은 당사자다. 당시 철도청장은 정종환 현 국토부 장관이다. 정 장관 역시 계약 체결 한달 뒤에 철도청장직을 떠났다. 본지는 정 장관 비서실에 수 차례 메모를 남기며 연락을 시도했으나 정 장관의 응답은 오지 않았다.

정 장관은 작년 7월 국회에서 "(부실 수요 예측과 관련한) 책임자를 추궁할 용의가 없나"란 질문엔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공항철도 계약에 문제가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후 책임자를 가리는 조사에 실제로 착수하지는 않았다.

철도청의 실무 책임자는 백종찬 당시 민자개발과장(현 코레일 시설단장)으로 민간 사업자측과 수요량 예측 등 쟁점 사항을 협상한 '정부 협상단'의 정부 대표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 역시 "철도청은 (정부 협상단에 소속된) 민간 전문가들을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역할만 했지 실제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백 단장은 "(정부를 대신해) 협상의 전권(全權)을 쥔 쪽은 철도청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 그룹"이라고 했다. 철도청은 민간 전문가들의 협상결과를 그대로 수용해 단순히 도장을 찍는 역할에 그쳤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철도가 10일 오후 운서역에 들어서고 있다. 이용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텅 빈 공항철도 역은 분위기까지 썰렁하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책임 떠넘기면서도 "자료는 없다"

반면 민간 전문가들 얘기는 정부 주장과 달랐다. 철도청이 건교부 지침에 따라 민간 사업자와 협상을 벌일 전문가 그룹을 선정한 것은 1998년 12월이다. 당시 각계 30명 안팎 전문가들로 '정부 협상단'이 구성돼 2000년 9월까지 활동했다.

당시 '승객 수요 예측'에 참여한 서울산업대학 김시곤 교수는 "정부 협상단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한 역할은 민간 사업자들이 가져온 수요 예측 자료를 보고 합리적인지, 과도한지 검토해 (정부에) 자문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뭔가를 책임지고 결정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 협상단이 전권을 쥐고 협상했다"는 철도청 주장과 완전히 다르다.

협상단의 다른 민간인 멤버들도 "협상 과정에서 (철도 승객 수가 예상보다 못 미칠 경우) 정부가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 규모 등에 대한 지침을 정부로부터 받았다"(한국교통연구원 유정복 박사) "건교부와 철도청의 의견이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반영됐기 때문에 (수요 예측 잘못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결국 정부에 있다"(인하대 하헌구 교수)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어느 쪽 말이 맞는지 가려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2년여 민간 사업자측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였으면서도 정부와 민간 전문가 그룹 모두 협상 전개 과정과 중간 결론 등에 대한 자료는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향후 30년간 연도별 예상 승객과 운임 수입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 계약을 체결했지만 어떤 근거로 이 수치가 도출됐는지 알 수 있는 근거 자료는 전혀 없는 상태"라고 했다.

정부 협상단이 2000년 9월 활동을 종료하면서 작성했다는 '최종 협상 결과 보고서'는 존재하는지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국토부는 "정부 협상단이 (철도청에) 제출했다"고 밝혔으나 협상단측의 김시곤 교수는 "그런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12일 국토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과 영종도를 드나드는 승객 가운데 철도 이용객은 7%(당초 예상은 40%)에 불과한 반면 정부가 계약 체결 때 고려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던 '공항 리무진버스' 이용객은 61%에 달했다. 철도 이용객은 내년 말 2단계 구간(김포공항역~서울역)이 완공되더라도 2011년엔 19%, 2031년엔 2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공항철도 건설 계약이 얼마나 졸속·부실로 체결됐는지 재확인된 셈이다.

  [블로그] 인천공항열차 탑승기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김포공항행 공항철도는 이용객이 거의 없어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