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9월10일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공식 가동을 시작했을 때 전 세계의 언론은 인류의 이 역사적인 이벤트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월드와이드웹(www)이 태어난 고향답게 CERN에서는 이 모든 상황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한국에서도 LHC의 공식가동은 꽤나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모 인터넷 포털 검색어 1위는 CERN이나 LHC가 아니라 ‘스위스 블랙홀’이었다. LHC가 성취할 과학적 성과보다도 보통 사람들의 관심사는 온통 블랙홀에 집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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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LHC가 블랙홀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 알고는 다양한 반응들을 쏟아내었다. 독일의 화학자 오토 로슬러 교수 등은 유럽인권재판소에 LHC의 가동을 중지하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그 이유는 LHC에서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작은 블랙홀이 지구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호놀룰루 연방지법에도 이와 비슷한 소송이 접수되었다. 심지어 인도의 어느 소녀는 블랙홀 소식에 자살하기도 했다. 지난 기사에서도 봤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덧차원이 있다면 LHC에서도 쉽게 블랙홀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이렇게 만들어진 블랙홀이 지구를 단숨에 집어 삼켜버릴까? 지구의 종말이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CERN에서는 LHC 실험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일급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LHC 안전성 사정모임을 만들었다. 사정모임은 작년 LHC 가동에 즈음하여 LHC 실험의 안전성에 관한 보고서(“Review of the Safety of LHC Collisions”)를 제출했다. | |

이 보고서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LHC 실험은 매우 안전하다. LHC 안전성 사정모임이 왜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그 근거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자. 우선 LHC의 실험 결과 지구나 인류에 위협을 가할 만한 요소에는 진공거품(vacuum bubble), 자기홀극자(magnetic monopole), 작은 블랙홀, 기묘체(strangelet) 등이 있다. 안전성 사정모임은 이런 가상의 위협 요소들이 LHC에서 설령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실제 지구와 인류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가장 유력한 간접증거는 놀랍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자체이다. 우주에는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들의 흐름이 있다. 이것을 우주선(cosmic rays)라고 한다. LHC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원운동하는 두 개의 양성자 빔을 충돌시키는 실험기구이다. 이 때의 충돌에너지는 양성자 질량의 약 1만4천 배에 이른다. 반대방향으로 운동하는 각 양성자가 각각 자기 질량의 7천배의 에너지를 가지니까. 우주선에는 LHC에서의 충돌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들이 많다. 그러니까 우주 자신이 이미 오랜 세월 동안 LHC와 비슷한 실험을 해 온 셈이다. | |

LHC는 초당 10억(=109) 번 양성자가 충돌하도록 설계되었다. 연중 LHC를 가동하는 기간은 1년의 약 1/3(=107초)에 해당한다. 만약 LHC를 10년간 운용한다면 LHC 실험을 하는 동안 양성자가 충돌하는 총 횟수는 1017번(=109x107x10)에 이른다. 한편 관측에 의하면 LHC에서 충돌하는 양성자의 에너지보다 같거나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우주선의 양성자는 1제곱센티미터 당 매초 5x10-14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수치는 무척 작지만 지구의 넓이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지구 전체에 충돌하는 고에너지의 양성자의 개수는 매우 많아진다. 실제 지구의 넓이는 센티미터 단위로 약 5x1018cm이다.
지구의 나이 45억년(= 약4.5x109x3x107초)을 감안하면, 지구가 태어난 이래로 LHC에서 충돌하는 양성자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가진 양성자들이 지구와 충돌한 회수는 대략 3x1022번 정도 된다.
(5 x 10-14) x (5 x 1018) x (4.5 x 109 x 3 x 107) ≈ 3 x 1022
이 수치는 LHC에서 10년 동안 양성자가 충돌하는 총 회수보다 약 30만 배 정도 크다. 그러니까, 우주는 지구가 만들어진 뒤로 지구에 대고 LHC와 비슷한 실험을 약 30만 번도 더 해봤다는 뜻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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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우주에는 지구보다 훨씬 큰 별이 무척 많다. 태양을 예로 들어보면, 태양의 반지름이 지구의 반지름보다 약 100배는 더 크다. 따라서 태양의 넓이는 지구보다 약 1만 배(= 104)이다. 그런데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비슷한 크기의 별이 약 1천억(=1011) 개가 있고, 우리 우주 전체에는 우리 은하 같은 은하가 또한 1천억 개 더 있다. 따라서, 지구가 태어난 이후 우주에서 고에너지 우주선의 양성자가 태양과 비슷한 크기의 별과 충돌한 총 회수는, LHC에서 10년 동안 양성자가 충돌하는 회수보다 약 1031배(=105x104x1011x1011)나 많다. 이것을 매초당 회수로 계산해 보면 매초 약 30조 번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즉, 우리 우주는 우주 전체에 걸쳐 태양 크기의 별에 대고 10년 동안 LHC에서 할 실험을 매초 약 30조 번씩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주 자신이 매초 그렇게 많은 회수의 실험을 하고 있음에도 태양이나 지구나 다른 별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큰 재앙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설령 LHC 실험에서 블랙홀(혹은 그 밖의 어떤 위협적인 요소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간접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다. | |

실제 LHC에서 블랙홀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그 블랙홀의 크기와 수명을 직접 계산할 수도 있다. 특히 그 수명은 대략 10-27 초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래홀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지난 글에서 설명한 호킹복사 덕분이다. 이 정도 수명이면 지구를 집어삼키기에는 터무니없이 짧다. 올 가을에 LHC가 다시 가동되어 실제 고에너지 충돌 실험에 들어가더라도 (첫 충돌실험은 대략 10월 말로 예정되어 있다.) 인류의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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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영화 천사와 악마로 더 유명해진 스위스의 CERN연구소의 입자충돌실험으로 블랙홀 논쟁이 많았는데 흥미로운 글이 떴네요^^ 그나저나 CERN에 정말 반물질이 보관되어져 있다는 말이 사실일려나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그건 글쿠 우리도 CERN같은 연구소 못만드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