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話 溫故知新 ⑫한반도 `허리 자른' 본스틸 대장 | |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주한미군사령관은 한 사람이지만 여러 개의 `모자'를 바꿔가며 쓴다.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Korea-U.S. Combined Forces Command:CFC)가 창설되기 전까지 역대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미8군사령관을 겸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초기에는 유엔군총사령부·미8군사령부가 일본과 우리나라에 별개로 설치돼 있어 사령관도 달랐다. 그러다가 57년 7월1일 유엔군사령부가 도쿄에서 서울로 이동한 것을 계기로 유엔군사령관이 미8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을 겸하게 된 것이다. 주한미군사령관 가운데 최장수 사령관은 38개월 재임한 제16대 스틸웰 대장이고 최단기 사령관은 1개월 재임한 제2대 밀번 소장이다. 밀번 소장은 미8군 초대 사령관 월턴 H 워커(Walton H Walker)대장이 50년 12월 한국전쟁이 한창일 무렵 경기도 의정부 부근에서 지프 사고로 전사하는 바람에 잠시 사령관직을 맡았다. 워커 대장은 한국전쟁에서 숨진 유일한 미군사령관이다.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대부분 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명지휘관들로서 대개 사령관에 임명되기 전부터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제9대 주한미군사령관 매그루더 대장은 그전에 주한미24·9사단장(53~54년)을 역임했으며, 제11대 사령관 하우즈 대장 역시 그전에 주한미군사고문단장(59~61년)을 지냈다. 제12대 사령관 비치 대장은 8군사령부 참모장(55년)을 지냈으며 제16대 사령관 스틸웰 대장은 한국전쟁 당시 군사고문단 수석고문관과 3사단 15연대장(50~52년)을 역임했다. 늘 왼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렸던 제13대 주한미군사령관 본스틸 대장은 45년 일본의 항복 직후 러스크 미 육군장관 보좌관과 함께 한반도에 38도선을 그은 장본인이다. 그는 또한 분단 이후 155마일 전선에 철책을 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본스틸 장군은 이래저래 한반도의 `허리를 자른' 장본인인 셈이다. 67년 내가 1군 작전참모(준장) 시절 1군사령관에게 건의해 철책선을 처음 설치했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GNP가 수백 달러에 불과해 이에 소요되는 철조망·쇠기둥 같은 물자는 거의 미군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미8군 작전참모 하프먼 준장과 본스틸 사령관을 설득해 미군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본스틸 사령관은 한국에 있는 미군 물자만으로는 부족하자 오키나와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쓰고 남은 잉여물자까지 공급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전쟁 기간 중 유엔군총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참전한 맥아더 장군을 비롯, 리지웨이 대장·클라크 대장 등 미군 사령관들은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해 공산군의 침략을 물리쳤다. 미군사령관들은 대체로 60년대 이전에는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차장 등으로 영전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60년대 이후에는 퇴역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이를 테면 테일러 대장은 육군참모총장, 렘니처 대장·데커 대장은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한 반면 매그루더 대장을 비롯해 멜로이·하우즈·마이켈리스·스틸웰 대장은 주한미군사령관을 끝으로 퇴역했다. 그러나 초대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한 존 W 베시 대장(76년 10월~79년 5월)은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했다. 한·미 양국은 78년 11월 서울 용산에 한미연합사를 창설하면서 예하에 지상구성군·해군구성군·공군구성군의 3개 구성군사령부를 설치했다. 구성군사령관은 모두 미군이 맡았다. 따라서 연합사 창설을 계기로 주한미군사령관은 기존의 형해화(形骸化)된 유엔군사령관·미8군사령관 감투에다가 CFC 사령관·CFC 지상구성군사령관이라는 모자를 추가로 쓰게 됐다. 나중에 미8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 예하의 3성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제대로 편성됐지만 한미연합사처럼 한 지휘관이 여러 개의 감투를 쓰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들도 무슨 감투를 쓰고 있는지 잘 모를 만큼 구조가 복잡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에서의 복무가 군생활에서 가장 잊을 수 없으며 영광스러운 기간이었다고 술회해 왔다. 한국 국민들 또한 맥아더 동상(인천시)이나 스틸웰 공적비(경기도 백령도) 등을 건립해 미군사령관들의 공적을 기려왔다. 그런데 최근 한·미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최근 미국 CBS 방송은 자사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60분' 시간에 `양키 고 홈(Yankee go home!)-한국의 반미 정서'라는 제목의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한 바 있다. 그런데 미 언론은 이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찰스 캠벨 주한미8군사령관이 인터뷰에서 한국의 촛불시위 도중 성조기(星條旗)가 찢기고 불태워진 것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내보낼 만큼 한·미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 호혜평등 관계를 지향하는 새 정부 대미정책의 원칙은 좋지만 절대로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2003.03.17 정리:김 당 오마이뉴스 기자 dangkim@empa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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