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10>사표를 써 가지고 다닌다-105-

화이트보스 2009. 5. 20. 17:13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10>사표를 써 가지고 다닌다-105-

64년 2월 육군본부에 육본개편위원회가 구성됐다(육본 직제 개정 공포는 65년 6월). 육본의 기구·기능·구조·제도 개편을 단행하는 위원회였다. 위원장을 이병형(육사4기·2군사령관·전쟁기념관 초대 관장·중장 예편·작고)소장이 맡고 나는 육본 인사참모부 대표연구위원으로 참여했다. 각 참모부 대표연구위원으로는 G1(인사참모)·G2(정보참모) G3(작전참모)·G4(군수참모)와 관리참모부의 대표자가 참여했다.

이병형 위원장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소집했다. 이위원장은 위원들이 의자에 앉자마자 비장한 어조로 서두를 꺼냈다.

“귀관들 사표를 써 가지고 왔나?”

위원들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얘기에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나는 오늘부로 사표를 써 가지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로 했소. 육군이 발족한 이래 최초로 공식적인 육본 구조 개편을 위한 역사적인 임무를 띠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거요. 이러니 언제나 자리를 내놓고 일을 해야 할 입장이오. 개편 결과가 어떤 참모부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고, 어떤 참모부에는 불리할 수가 있소. 이런 때 병사 하나 줄이는 데도 자기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참모부·군사령부·사단 등 말이 많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합리와 정직으로 혁명적인 개편 작업을 완수하려 하오. 그러니 여러분들 사표를 쓰는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오.”

나는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군 인사는 대체로 군사령관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인사권이 육군본부가 아니라 군사령관이나 군 부대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니 정실과 편파·편중이 있었으며 그에 따라 부정이 개입될 소지도 있었다. 더군다나 파벌이 조성되니 자연 군벌(軍閥)과 같은 조직 체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인사 제도에 따라 호평이 있는가 하면 불평과 악평이 있을 것이 자명하오. 그러나 육군본부의 구조 개편이 미래를 향해 발전하는 기반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이니 여러분은 자기 소관 이익이 아니라 육군참모총장 직속의 개편연구위원이라는 사명감으로 공명정대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안이 도출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오. 그래서 여러분에게 먼저 주문하고 싶은 것은 내 참모부를 위해 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라는 것이오.”

인사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정말 지난(至難)한 문제였다. 각자의 신상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부딪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첫 회의를 마치고 적어도 욕먹는 위원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우선 인사 분야에 관한 한 장군들을 찾아다니며 무엇을 원하는지 요구 사항을 듣기로 했다. 욕을 먹더라도 도피처는 마련되는 셈이고, 실제로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코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돌아다녀 볼수록 인사 분야의 절실한 문제는 군 인사 관리가 참모총장 방침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예하 군사령관이나 각 병과장 의사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을 뜯어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특히 파벌이 심해 어느 곳을 잘못 건드리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임관 신분별·기별 파벌은 물론이요 동문별·지역별로 세력이 조성돼 편제상 요구되는 병과별·계급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어느 누구 하나 손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육군본부의 현실이었다.

인사 관리가 합리적·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말썽뿐만 아니라 인사 불만이 누적돼 군 조직이 크게 흔들렸고, 5·16 역시 그런 연장에서 일어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사권을 육본에서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랬으니 위원장이 사표를 써 가지고 다닌다는 말이 결코 헛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