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37>학군단장으로 전출-132-

화이트보스 2009. 5. 20. 17:22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37>학군단장으로 전출-132-

1970년 10월 본국에서 온 연예 위문단을 인솔하고 예하 부대를 찾아가는데 갑자기 육본으로부터 한국외국어대학 학군단 단장으로 가라는 전출 명령이 떨어졌다.

본국의 여가수나 여배우들이 위문 공연을 와서 숙소에 속옷을 빨아 널어 놓으면 병사들이 이것을 훔쳐 허리에 꿰차거나 입으면 총을 맞아도 불사조처럼 죽지 않는다는 엉뚱한 풍설이 각 부대에 나돌았다. 그래서 병사들은 여배우 팬티를 구해 입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자 속옷을 철조망에 많이 걸도록 아이디어를 내놓고 병사들이 집어 가며 좋아할 모습에 취해 있는데 대학 학군단장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으니 조금은 엉뚱하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동료와 후배들은 군문을 떠날 때 예우 차원으로 주어진 보직이라며 걱정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상대적으로 한가한 자리고 전국 대학의 학군단장(27명)이 한 번도 장군으로 진급한 사례가 없었기에 나온 안타까움이었다.

이 말을 들을 때 사실 기분은 좋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만도 국가로부터 큰 혜택을 받은 것이며 대령으로 예편해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주위에서 섭섭하다고 하니 우울해지는 것이다.

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을 하면서 귀국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귀국하자마자 불면증에 몹시 시달렸다. 진중에 남겨 둔 병사들이 잠자리만한 왕모기와 시커먼 거머리에 살을 뜯겨 가며 작전에 나서는 모습, 시시각각으로 맞는 비상 회의, 전사한 병사들의 쓸쓸하고도 허망한 주검들, 이들을 처리하는 인사참모로서의 고충이 지워지지 않고 더욱 또렷하고 구체적으로 뇌리를 파고드는 것이었다.

밤이면 식은땀을 흘리고 헛소리를 하다 보니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며 울상이었다. 오만 가지 영상이 악몽과 흉몽으로 되살아나는데 이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전투를 앞두고 미군 병사들이 마약을 투약한다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학군단장은 대기 보직이다’ ‘좌천이다’ 하는 주변의 얘기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열심히 일했는데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현지 임관 출신이어서 도태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으로 우울증 상태까지 보였다.

악몽이 두 달이나 진행되다 보니 나는 폐인처럼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영영 주저앉을 것 같았다. 이건 ‘최갑석의 모습이 아니다’ ‘군인의 참모습이 아니다’라며 나는 어느 날 결단을 내렸다. 한가하니까 잡념이 생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당장 한가로운 근무 환경을 바꿔 버렸다.

마침 서울대에서 경영대학원 연수과정 원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나는 가족도 모르게 응시, 무난히 합격해 대학원에 나가게 됐다. 악몽으로부터 구제받기 위해 나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나갔으며 그것도 교수의 턱 바로 앞에 앉아 만학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나갔다. 이때 논문 주제를 ‘해외 주둔군 인사 관리’로 정하고 경험을 토대로 한 인사 관리 시스템, 조직 운영 과정을 정리했다. 무엇엔가 몰두하니 사람 꼴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수료 논문을 심사한 황병준 경영대학원장은 “군대 인사 관리 논문은 서울대에서는 처음이라 흥미 있게 읽었으며 앞으로 활용 가치가 있는 논문”이라고 총평해 주었다.

71년 새 학기가 시작되자 대학가는 아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군사교련 반대 시위가 격렬히 일어났다. 전국 대학에 위수령이 내려지고 한국외국어대학에는 공수특전단 1개 대대가 진주하고 휴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생들은 반대 시위를 계속했다. 말은 군사교련 반대지만 유신 체제 반대 시위였다.

이때 군사교련 반대와 교련 불참 학생들에 대한 일제 단속이 벌어졌다. 교련 반대자와 미수자는 곧바로 체포해 입영 영장을 발부한다는 것이었다. 이 숫자가 한국외국어대학만도 300명에 달했다. 모집 정원이 일반 종합대에 비해 적었는 데도 불구하고 300명이나 징집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큰일이 났구나 하는 위기감으로 구제책을 짜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