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장군이 된 이등병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38>교련 반대 시위 해결 -133-

화이트보스 2009. 5. 20. 17:23

제2話 장군이 된 이등병<238>교련 반대 시위 해결 -133-

300명의 학생들이 일시에 강제 군 입대한다면 무엇보다 대학의 학사 일정이 큰 차질을 빚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등록금으로 운영되다시피 하는 학교의 재정이 고갈될 것이고 교무 행정은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다. 피징집자들의 본의 아닌 피해는 물론 학부모들의 불안도 커질 것이다.

정권을 강화하는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오히려 정권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다. 대학 측에서도 “이래서는 안 된다”면서 학군단장인 나에게 묘책이 없는지 자문을 구해 왔다.

박술음 학장의 우려하는 표정이 안타까워 나는 무언가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문교부장관 면담 신청을 했다.

면담 요청 내용은 ‘교련 관련 안건’이라고 간단히 알려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비서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장 들어오라는 것이다. 하긴 문교부 쪽도 학생들을 무더기로 군대에 보낼 경우 그 부담이 고스란히 그들에게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홍종철(육사8기·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대령 예편) 장관은 나를 맞자마자 대학의 동요 상황부터 물었다.

“장관님, 강압적으로 진압할수록 데모는 커집니다. 젊은 녀석들이 책임질 사람이나 책임질 일이 없으니 자기 의사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높으니 신체적 구속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사라지면 학교가 공동화돼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래 어떤 안이 있나요?”

“교련 미필자나 반대자에게 강제 입대 대신 토·일요일 보충 교련을 받도록 하는 겁니다. 이렇게 구제책을 내놓았으면 합니다.”

홍장관이 생각에 잠기는가 했더니 “좋은 안이오”하면서 곧바로 병무청장에게 전화 연결하라고 비서에게 지시했다. 병무청장이 연결되자 홍장관이 말했다.

“교련 미필자들에게 토·일요일을 택해 교련을 받도록 하겠으니 영장 발부는 당분간 유보하시오.”

그쪽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답이 나온 것 같았다. 홍장관이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그렇게 하면 자신 있는가?” 하고 물었다. 이런 때 자신 없다고 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자신 있습니다!”하고 분명히 말했다.

이 내용을 박학장에게 보고했더니 고맙다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박학장은 그 후 교직원들에게 나를 대할 때 부학장 예우를 하라고 특별 지시하고 행사 때마다 학장 오른쪽 자리에 나를 앉히곤 했다.

보충 수업을 받는 식으로 군사 교련 문제를 해결한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갔지만 학생들이 고분고분 들어줄 리가 만무했고 데모는 계속됐다. 그러나 정부 쪽에서는 물러날 구실이 마련돼 처음 강력하게 실시되는 듯하다가 느슨하게 풀어지더니 결국 강제 징집이 취소됐다.

대신 교직원들에게는 훈련을 철저히 시켰다. 향토예비군 훈련에 불참한 교수 중 처벌받는 사례도 생겨났다.

나는 교직원들에게 알맞은 훈련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교내에 공기총 사격장을 만들기로 했다.

국방부 예비군 동원과장 경력에 힘입어 공기총 사격장 건설 지원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전국 대학 최초로 사격 훈련장이 대학 캠퍼스 내에 설치됐다. 교직원들이 흥미를 느끼고 사격장에 모여들었다. 스포츠의 일환으로 즐겁게 동참하는 것이었다.

이 결과 한국외국어대학이 문교부장관기 쟁탈 전국 대학생 사격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우승기를 앞세우고 선수와 학생들이 운동장을 돌며 환호하던 모습이 지금도 감격스럽게 되살아난다.

어느 날 나는 학군단 후보생들이 축제 때 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고심한다는 말을 듣고 여학생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여대생 명예 ROTC 창단을 제의했다. 모두들 신기한 반응을 보이더니 며칠 후 30여 명이 학군단장실로 찾아왔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