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중사는 당장 나에게 복장을 갈아입으라고 명령했다. 신발은 미군 병사의 헌 군화가 지급됐다. 그런데 그것이 짝짝이었다. 한 짝은 길고 한 짝은 간신히 발이 들어갈 정도로 짧았다. 나는 김중사에게 군화가 짝짝이라며 바꿔 신어야겠다고 말했다.
“바꿔 줄 신발이 있나? 잔소리 말고 신어!”
곧이어 전체 집합이 있었다. 구대장이 나오기 전에 김중사가 줄을 맞추고 “열중 쉬어, 차렷”을 구령했다. 그런데 나는 발을 맞출 수가 없었다. 신발이 한쪽은 너무 길고 한쪽은 너무 짧아 맞춰질 리가 만무한 것이다. 대오를 돌아다니던 김중사가 내 앞에 와 한쪽 발이 앞으로 삐쭉 나온 것을 보더니 내 다리를 군홧발로 세게 걷어찼다. 눈에서 불이 날 정도로 아픔을 느끼며 나는 고꾸라지고 말았다.
“일어섯! 교육생이 엄살이 많다!”
나는 기계적으로 일어났지만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간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가 맨 앞줄로 가더니 다시 “열중 쉬어, 차렷”을 구령했다. 그리고 열중을 일일이 돌아다니다가 다시 내 앞에 와 섰다. 역시 신발의 문수가 틀린지라 한쪽 발이 앞으로 삐쭉 나왔다. 그것을 보더니 그가 또 내 다리를 냅다 걷어찼다.
이렇게 계속 구타당하자 지혜가 생겼다. 그가 앞줄로 오면 재빨리 큰 신발 쪽을 뒤쪽으로 빼서 신발의 앞줄을 맞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고 그는 이번에는 몰래 뒤쪽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뒤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 내 쪽으로 오는지 몰라 신발을 앞뒤로 갖다 붙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이것을 노린 것이고 결국 또 걸리고 말았다. 두말없이 뒷다리가 불이 날 정도로 걷어채고 말았다.
그렇게 벌 아닌 벌을 받고 숙소로 돌아와 보니 다리 아래가 온통 피멍투성이였다. 동기생인 교육대장과 반말로 인사했다는 것이 이처럼 수모를 당하는가 싶어 분통이 터졌지만 생도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일본 육사 시절 익혔기 때문에 묵묵히 참아 냈다.
요즈음 식으로 하자면 나는 교관으로부터 완전히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교육대장이 알았는지 얼마 후 구대장을 시켜 구대장 방을 지키도록 했다. 말하자면 구대장실 당번병이 되라는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고스카에’(하수인)는 못할 짓이었지만 김중사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일 것 같았다.
책상 하나와 의자만 있는 황량한 구대장실의 당번병이 할 일은 빈 맥주병으로 마룻바닥을 문질러 윤이 나게 하는 일이었다. 구타와 기합에서 벗어나 고맙기는 한데 하는 일이 고작 마룻바닥 문지르는 일이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기합이 그리울 정도였다.
어느 날 구대장 책상 밑을 맥주병으로 문지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쑥 구대장실로 들어섰다. 책상 밑에서 올려다보니 가죽 장화를 신고 일본도를 옆구리에 찬 장교가 책상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책상 밑에서 기어 나와 그를 향해 기계적으로 경례를 붙이려는데 그가 먼저 “형, 무슨 짓이오?” 하는 것이다. 자세를 바로 하고 그를 보자 일본 육사 1년 후배인 오일균이었다. 그는 벌써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나 교육대에 들어왔네.”
일본 육사 시절 나는 그를 몹시 아꼈는데 지금은 완전히 지위가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오일균은 나를 어렵게 느꼈는지 도망가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화단 쪽에 난 유리창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상사 계급장을 단 초등학교 동창생 강을식이었다. 그는 유리창 틀에 C - 레이션을 얹어 놓고 인수하라며 놀란 눈을 했다. 그 역시 나인 줄을 처음 알았던 모양이었다.
C - 레이션이라면 총을 맞고도 우선 먹고 본다는 인기 있는 야전식이다. 엽연초를 신문지에 말아 피우던 생도들이 레이션 박스에 들어 있는 러키 스트라이크 필터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면 당장 자신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으로 인식할 만큼 선망하는 담배가 들어 있는 것이다. C - 레이션은 장교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강을식이 반갑기보다 귀한 C - 레이션에 취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오일균 대위가 갖다 드리라고 했어. 어서 받으라고.”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