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277>제3話 빨간 마후라 -27- 11명의 익사자와 진돗개

화이트보스 2009. 5. 23. 15:36
<277>제3話 빨간 마후라 -27- 11명의 익사자와 진돗개

1949년 6월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폭우가 쏟아지더니 대홍수가 발생했다. 나는 김포 비행장 관사에서 여의도 비행장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함께 출근하던 신유협 대위가 전날 밤 출퇴근용 지프를 몰고 시내로 나갔다가 귀가하지 않아 장교·부사관·문관들이 타고 출근하는 트럭에 동승해 여의도 비행대대로 향했다.

영등포 쪽에서 여의도 비행장을 가려면 샛강을 건너게 돼 있다. 그러나 요즈음처럼 다리가 놓인 것이 아니라 강바닥에 시멘트 도로를 내 건너다녔다. 정비사인 안영식 소위가 운전하고 내가 가운데, 그 옆에 서무갑 중위가 타고 다른 부사관과 장교·문관 등 20여 명은 지붕이 없는 뒤칸에 탔다.

샛강에 이르자 물이 범람해 건널 수가 없었다. 지혜가 있었던지 나이 든 사람들은 차에서 내리고 젊은 장교·부사관 16명은 그대로 차에 탄 채 샛강을 건넜다. 중간쯤 갔을 때 갑자기 차가 길에서 비껴난 듯하더니 그대로 뒤집어졌다. 화물칸에 탄 사람들은 전복된 차체에 깔린 듯했고 운전석의 중간 좌석(사실 가장 위험한 좌석)에 앉은 나는 순간적으로 서중위와 함께 밖으로 퉁겨져 나왔다.

범람한 강물은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물속은 뒤틀린 마귀의 저주처럼 격하게 용틀임하며 흐르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수영 선수를 지낸 나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기를 쓰며 물가로 나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격류는 나를 강 가운데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먼저 강둑에 닿아 나를 잡아 올리려고 처절하게 손을 내밀던 김연기 소위를 눈앞에서 멀거니 바라보면서도 잡지 못하고 가운데로 떠밀려가기만 했다. 몇몇 사람은 벌써 사체로 변한 듯 물속에 잠겼다 떠올랐다 하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힘이 빠져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도리 없이 몸을 뒤집어 배영 자세로 하늘을 바라보며 물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기진맥진한 끝인지라 곧 잠이 왔다. 자면 안 된다고 수없이 되뇌면서도 몸은 편안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강물이 언덕을 돌아가는 쪽에 이르렀을 때 수초가 내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수초를 잡았다. 수초는 힘없이 뽑혔다. 그러나 다행히 물에 빠진 곳이 수초 군락지여서 다른 키 큰 풀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을 잡자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았다. 지켜보던 강둑의 누군가가 달려와 장대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잡고 간신히 물가로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뜨자 그때까지 나의 한쪽 팔에는 항공 전술 서적이 담긴 가방이 들려 있었고 며칠 전 새로 구입한 구두를 그대로 신고 있었다. 급하면 이것들을 내동댕이쳐야 하는데 모르고 끝까지 소지했던 것이다.

이 사고로 짐칸에 탄 김정호 상사가 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는 11명의 사망자 중 한 사람이 됐고 나는 천우신조로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이때도 나는 김상사가 나를 살리고 간 것으로 생각했다. 합동 장례식 때 그처럼 김상사 이름을 부르며 운 적도 없다.

한편 차 전복 소식을 들은 아내와 장모님(아내의 첫 임신 때문에 상경해 계셨다)이 사고 현장에 당도했다. 나는 초죽음이 된 상태로 언덕 풀밭에 누워 있었는데 장모님이 나를 보고 안도하면서도 섧게 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으로 울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니 애지중지 기르던 진돗개가 없어졌다. 그 개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초췌한 몰골로 돌아왔는데 주인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고 꼬리치며 내 곁을 내내 떠나지 않았다. 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강물에 떠밀려 죽음 직전에 이르고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밖으로 뛰어나가자 개도 따라나섰다가 함께 차를 타지 못하고 차 꽁무니를 따라 달리다 뒤늦게 주인의 체취가 묻은 강가에 당도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가 일주일 만에 어찌어찌 찾아온 것이었다. 진돗개는 진도 출신의 중학교 동창이 선물한 두 마리 중 한 마리였으며 나머지 한 마리는 김신 3중대장에게 주었다. 나보다 세 살 위인 김중대장은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 주었는데 아버지 김구 선생과 함께 경교장에 살면서 출퇴근하고 있었다.

김구 선생이 진돗개를 무척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나도 기뻤다. 이를 계기로 김중대장이 몰고 다니는 소형 승용차를 함께 타고 경교장으로 가 김구 선생께 자주 문안드리는 기회도 가졌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