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291>제3話 빨간 마후라 -41-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의 전사

화이트보스 2009. 5. 23. 15:43
<291>제3話 빨간 마후라 -41-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의 전사

박범집 공군참모차장은 고향 땅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고 다음 날 귀대하기 위해 비행장으로 나왔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물을 가져왔다. 선물은 고향 특산물인 청어였다. 함흥 앞바다는 예부터 명태·청어가 많이 잡히는 고장이었다. 집집마다 명태나 청어로 김치(식혜)를 담가 먹을 정도였다.

“데리고 다니는 부하가 많을 텐데 청어나 몽땅 구워 주소.”

인심이 후한 고향 사람들은 비행기 뒷좌석에 청어 상자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워낙 꽁지가 무거워 뜨는 듯 마는 듯하다 기수가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계속 한쪽으로 쏠리더니 건너편 산에 추락하고 말았다. 고향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송하는 바로 눈앞에서 T-6은 폭발했고 박참모차장과 서한호 작전국장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소식을 접한 공군은 초상집이 됐다. 공군으로서는 최고 지위자가 전사(적지에서 숨졌기 때문에 두 사람을 전사자로 처리)한 데다 존경스러운 선배가 변을 당했으니 그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참모차장은 일본 육사52기로 나보다 8년 선배였다. 우리 공군 창설 7인 중 한 사람으로 참모총장이 될 수 있었지만 2년 후배인 김정렬 선배에게 한사코 총장 자리를 양보한 분이다. 참모총장은 조종사 출신이어야 하며 자신은 정비 출신이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없다고 고사한 것이다.

내가 작전국장으로 있을 때 전력 증강을 위해 세운 비행기 100대 보유, 10곳 비행장 확보 등의 계획안을 여기저기서 비판하는데도 “장지량의 비전과 스케일이라면 됐다”라며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 분이었다. 그는 나중에 조종술을 익혀 전투 비행사로서의 몫도 다했으며 6·25전쟁이 나자 직접 전선으로 뛰어든 충성스럽고 엄격한 군인이었다. 전쟁은 본래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이런 아까운 분들을 빼앗아 간다는 점에서 저주스러웠다.

1950년 12월2일. 미림 비행장 정문을 지키던 보초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이상한 청년이 부대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보고였다. 현장에 나가 보니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청년이 보퉁이를 안고 서 있었다. 부대로 데려와 보퉁이를 열어 보니 기다란 청룡도 여섯 자루가 나왔다. 바로 중공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공군이 새까맣게 넘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만주를 폭격, 중공군의 개입을 막으려 했지만 미국 정부는 국민 여론에 따라 전쟁을 어떻게든 종식시키려는 방침을 세웠다. 만주 폭격으로 공산군의 도발을 차단하려는 맥아더 장군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급격하게 돌아간 외교전 때문이었다(94년 미 버클리대 주최 ‘한국전쟁에 관한 고찰’ 국제 세미나 참조).

이오시프 스탈린은 미국을 건드리면 득 될 게 없다는 판단 아래 김일성에게 만주에 망명 정부를 세우도록 독려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을 위협했다.

반면 중공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만주 땅에 김일성이 망명 정부를 세우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국공 내전에서 어렵게 승리한 마오쩌둥으로서는 망명 정부를 수용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반도 북위 40도 이북을 국경선으로 해 휴전하도록 김일성에게 종용했다. 북위 40도라면 서해 쪽으로는 신의주 밑 용천이고 동해 쪽은 함흥 신포 지역이다. 즉, 평안북도와 함경남북도를 말한다. 이런 정도라면 숨만 쉬고 간신히 연명하는 영토였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전쟁 종식을 위해 만주에 원자 폭탄을 투하할 것을 계속 고집했다. 당시 미국은 14발의 원자 폭탄 여분을 갖고 있었으며 이에 놀란 마오쩌둥이 북위 40도선 휴전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영국이 미국을 만류하고 나섰다. 한반도 통일은 우방인 영국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꼴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이 만주에 핵을 사용할 경우 소련이 영국을 핵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영국을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만주 공격을 저지하자는 전략이다.

결국 미국은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한 전쟁(no win policy)에 나선 것이고, 이것이 휴전의 중심 테제(주제)가 되고 말았다. 역시 남의 손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꿈은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의 교훈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