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293>제3話 빨간 마후라 -43- 남부군 지휘부 일망타진

화이트보스 2009. 5. 23. 15:44
<293>제3話 빨간 마후라 -43- 남부군 지휘부 일망타진

우리 공군은 곧바로 남부군 지휘부 폭격에 나섰다. 김영환 전대장(편대장)이 이끄는 F - 51 편대가 T - 6기를 몰고 정찰에 나선 나의 정보를 바탕으로 남부군 지휘부의 수송 차량과 지프, 통신 수단을 폭격했다.

우리의 기습 작전으로 남부군 지휘부는 완전히 파괴됐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그런데 작전 임무를 완료하고 고도를 취해 귀대하던 중 1번기 날개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김전대장 비행기가 적의 대공포를 맞은 것이었다. 무전 교신을 통해 김전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가 침착하게 불시착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비행기는 동체를 가누지 못하고 어지럽게 추락했다. 그러나 그는 최후의 순간에도 조종간을 놓지 않고 곡예사처럼 섬진강 상류 모래밭에 비상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실로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나는 불시착 장소 상공을 선회하며 본부에 T - 6 훈련기를 지정된 장소로 보내도록 조치했다. 지시대로 T - 6기가 날아와 전주 ~ 남원 국도 사이의 임시 비행장에 비상 착륙했다. 적이 기습해 오기 전에 김전대장을 구출해야 하기 때문에 나머지 3대의 전투기는 계속 상공을 선회하며 적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작전 두 시간 만에 김전대장을 구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공군의 일사불란한 팀워크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1951년 8월 중순. 산청 경찰서로부터 인민군 1개 대대가 가야산의 해인사를 기습 점령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경찰은 이들을 저지(폭격)해 달라고 우리에게 긴급 요청했다. 나는 미 고문단 6146부대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6146부대는 다시 대구의 미 공군 작전본부에 보고했다. 뒤이어 역의 명령 체계로 나에게 “해인사 폭격을 단행하라”는 최종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즉각 장덕창 비행단장과 김전대장에게 명령 사항을 보고했다. 목표물 해인사를 1개 편대로 폭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해인사라면 천년 고찰인 데다 우리 민족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유물 팔만대장경이 보존돼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폭격하면 고찰은 물론 팔만대장경이 온전할 리가 만무했다.

순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파리를 지키던 와이장 방위사령관이 독일군에 무조건 항복한 일이 생각났다. 소년 시절 읽은 것이지만 와이장 장군은 파리가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항복이냐 아니냐의 선택 기로에 서 있었다. 와이장 장군은 결국 파리를 살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항복했다. 그래서 오늘날 파리가 온전히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미국도 태평양 전쟁 중 일본 본토를 공격하면서 고도(古都) 교토(京都)와 일왕이 살고 있는 도쿄(東京)의 궁성만은 폭격 목표에서 제외했다. 유적·유물은 한 번 부서지면 재생시킬 수 없으며 그것은 피아 구분을 떠나 인류 전체의 재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출격 대기 중인 김전대장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보기에 인민군이 해인사를 점령한 것은 식량 확보 차원으로 판단됩니다. 인민군놈들이 불공드리러 절에 들어갔을 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해인사 폭격은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 좋은 김전대장도 이를 알아차리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인민군이 식량을 확보하면 산속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루트를 따라가서 격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우리 둘의 의기 투합을 확인하고 라인으로 돌아오는데 비행기 대기장으로 급히 오는 미 고문단 윌슨 대위와 마주쳤다. 그가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

“왜 출격 시간이 넘었는 데도 출발을 안 시키는가?”
“잠시 홀딩하고 있다.”
“왜 홀딩인가?”

그래서 나는 알기 쉽게 “Do you know Paris?”하고 물었다. 그러나 비약이 너무 심했던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Do you know Japanes Kyoto?”하고 물었다. 여전히 윌슨 대위는 이해하지 못하고 “What do you mean Kyoto? This is Korea!”하고 화를 냈다. 그러나 나의 영어가 짧아서 그 이상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때 김전대장이 달려왔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