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제3話 빨간 마후라 -109-황제의 선물 | |
황제를 모신 가운데 무용단의 한국 전통 무용과 ‘아리랑’ ‘도라지 타령’ 합창 등 아름다운 선율과 공연이 이어지자 객석은 환호 일색이었다.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셀라시에 황제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황제가 돌아가면서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내일 황실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오. 점심을 대접하겠소.” 이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곁에서 비서실장이 “경하합니다”라고 축하해 줄 정도였다. 나는 대사관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내일 오찬장에 황제가 나오시면 우리 임금님에게 절하듯이 큰절을 하라”고 교육했다. 다음날 나는 무용단을 인솔해 황실로 들어갔다. 황제가 나타나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 무용단원들이 큰절을 올렸다. 황제가 흡족한 웃음을 만면에 띠었다. 사실은 나도 황제를 면담할 때 이렇게 무릎을 꿇고 인사한 적이 있다. 황제는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는데 나는 한국에서는 임금에게 이런 예의를 차린다면서 그대로 큰절을 했다. 어린 무용단원들이 나처럼 큰절을 또 올리니 황제는 매우 흡족해하면서 40여 단원 모두에게 조약돌만한 금반지 하나씩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가 세계적 금 산지이기는 했지만 이런 선물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이때 수행한 임병직(전 외무부장관) 순회대사와 나는 또 다른 걱정을 했다. 저러다가 만약 아프리카식대로 예쁜 무용단원 중 두세 아이를 두고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겁이 덜컥 났다. 황제는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황실과 결혼설이 있었다. 이때 그는 황실의 궁녀들을 모두 일본 여자로 바꿔 놓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에티오피아의 적국인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자 결혼을 파기해 버렸다. 이처럼 그는 무엇이든 하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당시는 황후가 이미 죽고 큰 공주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고적한 편이었다. 80노인이지만 나라 전체가 황제 개인 것이나 다름없으니 무엇인들 못할 게 있었겠는가. 그래서 이런 것이 걱정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다행히 황제는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1972년 10월 유엔 총회가 열렸다. 한국은 유엔 가입을 위해 각 나라의 표를 확보해 나가는 중이었다. 이 중 비동맹 국가들의 표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은 북한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 한국을 배척하고 있었다. 유엔 가입을 위한 득표가 북한과 경쟁하는 입장이어서 한 표라도 더 얻는 것이 외교전의 승리를 담보하는 것인데 이처럼 여의치 못했던 것이다. 이때 김용식 외무부장관이 나를 유엔 임시 지명 대사로 임명하고 뉴욕으로 오도록 지시했다. 뉴욕에 가니 김장관이 4명의 상주 직원을 진두지휘하며 매일 표 점검을 하고 있었다. 본국에서 국회의원들이 지원을 나왔지만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며칠 묵고 돌아갈 뿐이었다. 매일 아침 임시 대표부 사무실에서 김장관과 나를 비롯해 6명이 각자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회의를 열었다. 나라별로 접촉한 결과를 토대로 OX 표시를 해 가며 점검했지만 크게 진전이 없었다. 그런 중에 김장관은 에티오피아 표를 대단히 중시했다. 에티오피아 표를 확보하면 다른 비동맹 국가도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표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6·25 전쟁 때 16개 유엔 참전국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공산권과 가까운 비동맹 지도국으로서 정치적 입장이 다른 것이다. 상황이 그런데도 김장관은 회의를 열면 “에티오피아는 어떻소”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예스냐, 노냐를 말하는 대신 “두고 보시지요”라고만 대답했다. 마침 유엔 주재 에티오피아 대사는 황태자의 처남이었다. 나는 그가 유엔 대사로 떠나기 전 아디스아바바 한국 대사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푼 적이 있다. 한국 대사관은 큰 공주의 사저를 전체 세 들어 사는 집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쿠데타 실패 이후 무력해 있는 황태자를 만나 “3S를 조심하라”고 경고, 황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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