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빨간 마후라

<369>제3話 빨간 마후라 -119- 대사관 질서 잡기

화이트보스 2009. 5. 27. 21:04
<369>제3話 빨간 마후라 -119- 대사관 질서 잡기

나는 그날 밤 10시 대사관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대사관 직원이라야 대사를 포함해 모두 6명이다. 그런데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참사관이 나에게 보고하지 않고 자기 본부로 전보를 보낸 것은 아무리 공명심이 앞선다고 해도 묵과할 수 없었다.

나는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를 대신해 임지에 와 있는 사람이다. 한국의 대표이고 대통령의 대리인인 것이다. 그런 나를 무시하고 자기 공을 세우겠다고 몰래 서울로 전보를 치다니. 내 일생에 그처럼 화가 난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화를 누르며 먼저 외무부장관에게 전화한 사실부터 말했다.

“내가 전화할 때 서울은 새벽 2시였다. 박동진 장관이 잠을 자다가 내 전화를 받고 대단히 흥분했다. 신문 1면 톱감이라며 ‘장지량 만세’하고 소리 지를 정도였다. 그만큼 엄청나고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참사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했나.”
“본부로 전보를 쳤습니다.”

“북한 대사가 담배와 마약 밀수 혐의로 추방 명령을 받았다면 누구에게 먼저 보고해야 하나. 눈앞에 있는 지휘관에게는 보고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기구에 알리고는 음악회에 가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그제서야 참사관이 “일 처리가 적절치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 지휘관에게 보고를 안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에게 알린다면 일의 대처가 어떻게 되겠는가.”

한편 사무실에는 덴마크 여성 미스 크론이라는 비서가 있었다. 본래는 주 5일을 근무하게 돼 있었는데 얼마 후에는 주 4일 근무하더니 또 주 3일이 됐다가 나중에는 제멋대로였다. 그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내가 덴마크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서 겸 통역으로 쓰고 있는 그녀가 없으면 업무가 마비될 정도인데 근무 태도가 엉망인 것이다.

내용을 알아봤더니 그 참사관이 술 사 먹이고 함께 놀다 보니 그리 된 것이었다. 한국 대사관 기강이 엉망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명예 총영사인 덴마크 실업가 롬버도 나에게 “문제의 참사관이 대사처럼 행세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외교관 생활을 하다 보면 정보 담당이 대사관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를 본다. 현지 대사가 CIA에서 파견 나온 참사관에게 꼼짝 못하는 미국 대사도 봤고 공산권의 경우는 더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기구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외교 훈령을 내려 ‘재외 공관원은 지위 여하, 직무 여하를 불문하고 대사에게 복종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위계질서를 무시한 처사를 방치할 수 없어 다음날 중앙정보부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중정 차장은 공군 장군 출신으로서 나의 후배였다.

“○차장, 전화로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니 나에게 사람을 보내 줄 수 있겠소?” 독일 공사를 보내겠다는 답변이 왔다. 서독에는 대사관이 크니까 중정에서 파견한 공사가 있었다. 다음날 공사가 부랴부랴 찾아왔다. 공사도 자초지종을 듣더니 “업무 순서가 잘못됐다”며 사과했다. 그래서 내가 주문했다.

“다만 부탁이 있으니 들어 주면 좋겠소. 참사관을 이보다는 나은 곳으로 보내 주시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오.”

참사관은 중국어에 능통했다. 그래서 중국어가 통용되는 부서에 중용됐다. 이렇게 해서 나는 대사관의 질서를 잡아나갔다. 기구가 문제의 기관으로 추락하느냐 정상적으로 작동되느냐 하는 것은 직원이나 주변 여건이라기보다 지휘자의 통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은 덴마크에 상주 대사관이 있는데 덴마크 왕국은 서울에 상주 대사관을 두지 않았다. 대신 일본 주재 대사가 한국대사를 겸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찾아보고 돌아가 우리 대통령이 대단히 불만스러워했다. 날로 커가는 경제력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당연히 상주 대사관이 설치돼야 했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