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제3話 빨간 마후라 -116- 위기일발의 비행 사고 | |
1958년 김포 11전투비행단장 시절 필리핀 기술자들이 김포비행장 활주로를 건설했다. 그만큼 우리의 토목 기술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5년 후 우리 기술진이 필리핀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를 직접 현장에서 보고 가슴 벅찬 감격을 맛봤다. 공사 현장의 우리 기술진은 매사 자신감이 넘쳤다. 놀라운 토목 기술과 세계를 향해 포효하는 자긍심을 보고 나 역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업체의 공사를 위해 조력하는 한편 기술진이 들어가 있는 오지 현장에 비행기와 자동차,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 격려했다. 74년 9월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섬인 민다나오. 현대건설 등 우리 건설 회사들이 섬 남쪽에는 국도 건설, 북쪽에는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나는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멜초 마르코스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민다나오로 갔다. 그러나 전용기는 오지인 현지까지 갈 수 없어 돌려보내고 대신 비행장에서 준비한 경비행기 L-20 두 대에 분승해 갔다. 내가 탄 6인승 비행기는 공군중위가 조종간을 잡고 정비사가 수행했으며 탑승객은 우리 건설사 사장을 비롯해 한국인 4명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공항기지사령관(대령)이 조종사에게 나를 한국의 공군참모총장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비어 있는 부조종석에 앉도록 조치했다. 비행기가 30분쯤 날았을까 갑자기 ‘선더스톰’(번개 돌풍)을 만났다. 조종사는 악천후 속의 구름층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들어가지 마라!”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그는 경험과 기술이 미숙해 피하지 못하고 두터운 구름층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순간 동체가 종잇조각 구겨지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속수무책으로 우측으로 기울면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조종사를 걷어차듯 옆으로 밀쳐 내고 컨트롤 스틱을 잡았다. 위급 상황에서 동체를 정상화한 다음 고도 수정과 속도 조절을 해야 했다. 이때 뒤 좌석에 앉았던 정비사가 갑자기 뛰어들더니 두 팔로 내 목을 힘껏 조이는 것이었다. 내가 조종사 출신인 줄 모르고 그러는 것이었다. 젊은 정비사가 목을 조르니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헉헉 거친 호흡을 하며 조종간을 잡았지만 중위도 달려들어 조종간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동체가 더 요동칠 뿐이다. 이러다가는 다 죽을 것이 뻔했다. 나는 목을 조르고 있는 정비사의 샅을 걷어차 눕히고 쓰러진 그의 목을 구둣발로 밟은 채 조종사로부터 조종간을 빼앗았다. 조종사도 도리가 없었던지 벌벌 떨며 옆으로 밀려났다. 이때 비행기 고도는 50피트(약 20m)로 떨어져 있었다. 바로 발 아래 파인애플 밭이 획획 지나가고 있었다. 만약 그곳이 파인애플 농장 지대가 아니었으면 비행기는 어딘가에 부딪쳐 박살 나 버렸을 것이다. 나는 간신히 고도를 잡고 구름층을 뚫고 나가 이륙 비행장으로 회항했다. 비행장에 내리자 동체의 요동에 탑승객 모두 오물을 토해 내며 사색이 돼 있었지만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정신없는 중위에게 물었다. “비행기 몇 시간 탔나.” “230시간 탔습니다.” “비행기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끌어올린 것을 알고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구름층으로 들어가 비행기가 요동치자 방향을 잃었습니다.” “그렇다. ‘앤 유절 포지션’에 들어갔다. 고도·방향·속도를 다 잃어버린 상황이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Thank you, Today is my second birthday, sir.” “오래 살아라. 그래야 훌륭한 조종사가 될 수 있다.” 그가 오늘이 제2의 생일이라고 하는데 나는 한국 기술자들에게 줄 선물 중 위스키 한 상자를 생일 축하 파티로 쓰라고 내주고 비행장 인근 호텔로 들어갔다. 다른 비행기도 악천후 때문에 회항해 기공식은 귀빈이 불참한 가운데 조촐히 치러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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