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제3話 빨간 마후라 -114- 격동기, 현대사의 전환점 | |
내가 일본 육사 본과(항공사관학교) 시절인 1945년 7월 생도들이 1, 2진으로 나뉘어 만주로 비행 훈련을 가기로 방침이 세워졌다. 일본 내에서는 미국의 폭격이 심해 도저히 훈련받을 수 없어 만주로 나간 것인데 1진이 7월28일 청진에 도착했을 때 소련군이 진격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탈출,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2진으로 뒤이어 가기로 했으나 1진의 탈출 상황 때문에 가지 못하고 결국 일본에서 광복을 맞았다. 9월2일 맥아더 사령관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이 조선을 분할 점령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미 태평양사령부는 9월7일 남한에 군정을 선포하고 같은 달 하순 하지 중장의 미24군단이 서울에 진주했다. 소련보다 1개월 더 늦은 것이다. 광복은 됐지만 한국은 서로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혼란상이 거듭됐다. 날마다 무슨 무슨 위원회가 생기고 단체가 난립하면서 상호 비방과 모략, 배척과 대립, 테러가 격화됐다. 이때 하지 중장은 미국을 잘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며 워싱턴에 급전을 쳤다. 이 과정에서 로물로 장군의 역할이 큰 몫을 했다. 로물로 장군은 이승만 박사가 미국 망명 생활을 하면서 조국을 찾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강력하게 귀국할 의사를 가지고 있어 하지에게 이박사 급거 귀국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보낼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요즈음처럼 항공편이 있을 리 만무하고 선편도 없을 뿐더러 가더라도 한 달 이상 걸리고 또 70 노객이 태평양의 험한 파도를 헤치고 가려면 건강도 악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한 로물로 준장은 곧 맥아더 태평양사령관을 찾아갔다. 이때 맥아더는 업무 협의차 워싱턴에 와 있었다. “각하, 이승만 박사를 급히 서울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선편으로 보내자면 한 달 이상 걸려 내년(1946년) 초에나 도착할 것 같고 무엇보다 70 노객이라 건강이 문제입니다. 미국을 잘 아는 사람이 한국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면 각하의 전용기로 신속히 보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은 지금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혼란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맥아더 원수는 막료의 건의에다 하와이에 항일국민군단(군사학교)을 세워 활동하다 죽은 노백린과 항일 운동을 하는 이박사를 조금은 알고 있어 건의를 받자 곧바로 자신의 전용기를 내줬다. 이것은 엄청난 정치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 승전국의 총사령관이 자신의 전용기를 내줬다는 것은 술독처럼 바글거리는 서울의 분위기를 일거에 잠재우는 일대 사건이 되고도 남았다. 이렇게 해서 이박사는 45년 10월16일 귀국, 전국 순회 연설회에 나서면서 해방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잡아 나갔다. 배를 타더라도 이틀이면 올 수 있는 충칭(重慶)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은 이보다 한 달 이상 늦은 11월23일 개인 자격으로 귀국, 모든 면에서 뒤처졌다. 중국의 우리 독립군도 단체 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패잔병처럼 들어와야 했다. 만에 하나 이박사 귀국 길이 순조롭지 못했거나 선편으로 해가 바뀌어 귀국했더라면 해방 공간의 한국 현대사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처럼 이박사의 귀국에 크게 일조한 사람이 로물로 장군이었으며 그는 그 역할 수행을 대단한 긍지로 여겼다. 그는 6·25전쟁 때의 비화도 소개했다. “유엔 총회 의장으로 있던 50년 6월25일 나는 코리아에서 전쟁이 난 것을 전문으로 확인했소. 북한의 불법 남침을 묵과할 수 없어 곧 임시 총회를 소집하라고 지시했는데 그날이 하필 일요일이었소. 사안이 사안인지라 긴급 회의를 소집했는데 회의 주재 실무 책임자가 집에 부재중이라는 것이었소.” 로물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대표인 소련 대사가 본국에 일 보러 간 사이 참전을 가결시키려고 했는데 답답하게도 실무 책임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요일이면 어디에 가 있는 줄을 로물로는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일요일이면 버지니아 산림 지대로 야생 사슴 사냥을 가는 헌터였소. 내가 그것을 알고 그리로 사람을 급히 보냈지. 우리는 그를 사냥하러 간 것이야.” <이계홍 용인대 겸임교수·인물전문기자> 2005.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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