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바다로 세계로!

<392>바다로 세계로! -22- 인천상륙작전-8

화이트보스 2009. 5. 27. 21:23

<392>바다로 세계로! -22- 인천상륙작전-8

압도적으로 우세한 화력과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한미 해병대 앞에 적의 저항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퍼싱전차의 포격과 로켓포 공격, 그리고 75mm 무반동총과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전투는 불과 5분 만에 끝났다.

포연이 가시면서 길가에 널부러진 적병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구가 넘었다. 아군 피해는 부상 한 명뿐이었다. 스트러블 제독, 알몬드 군단장 등 휘하 지휘관을 대동하고 17일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 장군이 이 현장을 시찰했다. 맥아더 장군은 아직 불타고 있는 적 전차와 적병들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만족한 표정으로 한국 해병 용사들의 감투정신을 칭찬했다.

“본인은 한국 해군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해군첩보대의 활약은 훌륭했습니다. 그 첩보들은 나의 상륙작전 결심을 확고하게 해 주었습니다.”손원일 제독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훌륭하게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인사했다.

“애드미럴 손, 지금 이 자리에 없어서 유감입니다만 나는 그들(한국 해군첩보대원)에게 미국의 은성훈장을 주도록 상신했습니다. 애드미럴 손과 신사령관도 포함돼 있습니다.”

머레이 중령으로부터 신현준 사령관을 소개받은 맥아더 장군은 이런 말로 신사령관의 공로를 치하했다.“감사합니다. 제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손제독의 이 말에 맥아더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곧 있게 될 서울 탈환작전에 한국 해병대가 앞장서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맥아더는 옆에 있던 알몬드 장군에게 손제독의 요청을 전하면서 서울에 제일 먼저 입성하는 영예를 한국 해병대에 양보하면 어떻겠는가 하고 의향을 타진했다.“글쎄요, 한국 해병대가 지금까지는 잘 싸웠지만 미국 해병대 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요?”알몬드가 이렇게 대답하면서 통역관을 찾자 손제독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걱정 마십시요. 한국 해병대는 지금까지 패해 본 일이 없는 군댑니다. 알몬드 장군, 서울 수복작전에 우리 해병대가 앞장서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손제독의 말에 알몬드는 “좋습니다”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서울 탈환작전에 한국 해병대가 앞장서게 된 것은 이렇게 결정됐다.

첫 전투에서 대승한 한미 해병대는 사기가 충천했다. 내친 김에 김포를 향해 진격을 계속, 오후 6시쯤에 비행장 남쪽에 도달했다. 어둠을 틈타 비행장 경내에 진격했을 때 적군의 저항은 미미했다. 주변에 진지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활주로 파괴도 없어 온전하게 제1 목표 시설을 접수할 수 있었다.

18일 새벽부터 100~200명 단위의 적군 반격이 있었다. 그러나 화력 지원 없이 수류탄과 소총에 의한 산발적인 공격이어서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퍼싱전차를 앞세운 한미 해병대의 반격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되자 적은 비행장을 포기하고 서북 방면으로 패주했다.

19일부터는 한강 도하작전 준비가 시작됐다. 한강을 건너 서울 서북쪽으로부터 서울을 공격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한미 해병대는 행주나루를 도하 지점으로 선정했다. 김포비행장에서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강폭이 좁아 중차량을 도하시키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건너편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부녀자들까지 동원해 왜군 3만 명을 물리친 역사적인 전승지였다. 한국 해병대원들에게는 당연히 심리적으로 큰 자극제가 됐다.

<정리=문창재 (언론인)>

200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