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바다로 세계로!

<394>바다로 세계로! -24- 인천상륙작전-10

화이트보스 2009. 5. 27. 21:24
<394>바다로 세계로! -24- 인천상륙작전-10

오후 6시30분 연희 104고지는 한국 해병대에 점령됐지만 승전의 기쁨은 잠시였다. 야음을 틈타 적의 반격이 시작됐다. 무려 3시간이나 계속된 고지 전투로 피아 간에 큰 피해가 났다. 그러나 한국 해병대가 강고하게 고지를 지켜냄으로써 서울 시가지 탈환의 발판이 마련됐다.

해병대가 서울 시가지에 입성했을 때 적치 아래서 신음하던 서울 시민의 환호는 열광적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군중들은 깊이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사기가 충천한 용사들은 길거리에 나붙은 김일성 초상을 발견하면 육두문자를 입에 담아가면서 달려가 찢어 버렸다.

“서울역 앞 지금 대우빌딩 자리에 있던 대한통운 건물 벽에 김일성 초상이 붙어 있었어요. 그걸 보고 우리 소대 최창성 선임하사가 달려가 초상을 떼어 버렸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시가전이 붙었는데 그만 분대장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제2대대 5중대 2소대장이었던 강복근 예비역 대령은 그 일이 지금도 가슴에 한으로 못 박혀 있다고 한다. 소대원들은 총탄이 날아온 건물을 화염방사기로 공격해 복수했지만 중앙청에 태극기가 휘날리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어서 더욱 애석해하고 있다.

중앙청에 태극기가 게양된 것은 한국 해병대 제2대대 6중대 1소대장이었던 박정모(예비역 대령) 소위의 영웅적인 거사였다. 그는 작전 중 내내 그것만은 자신이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나라의 심장인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는 일만은 꼭 내 손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외국 군대에게 그 일을 빼앗긴다면 그보다 큰 수치가 또 있겠습니까.”작전 중 박소위는 소대원 김칠용 견습해병에게 가장 큰 태극기를 구해 허리에 두르고 대기하도록 명령했다. “너희들 셋은 지금부터 나를 따라와!”

태극기가 준비되자 박소위는 양병수 이등병조와 최국방·김칠용 견습해병에게 명령했다. 중앙청이 있는 광화문 일대는 미 해병대 작전 지역이었다. 남의 작전 지역에서 전투 지휘하는 것은 약속 위반인 것을 알지만 박소위는 반칙을 감행했다.

“공격 앞으로!”
중앙청 담 밑에 도달하는 순간 박소위는 세 대원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와! 와!”

천지가 진동할 듯한 함성을 지르며 박소위와 세 병사는 중앙청 안으로 돌격했다. 국기게양대에 도착하자 김 견습해병이 허리에 감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줄에 단단히 묶어 맸다. 그리고 넷이서 힘껏 줄을 당겨 올렸다. 3개월 동안 인민군 치하에 있었던 서울 하늘에 처음으로 태극기가 휘날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50년 9월26일 동틀 무렵이었다. 이 장면은 종군기자 박성환에 의해 극적으로 촬영됐다.

이틀 뒤에 손원일 제독의 공식 포고문이 발표됐다. 백지에 붓으로 쓴 포고문은 시내 요소마다 나붙어 수많은 시민에게 수도를 되찾은 기쁨을 안겨 주었다.

‘친애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그간 공산당의 강압 아래에서 받은 고통은 도저히 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것이었다고 본관은 알고 있습니다. (중략) 여러분은 군의 고충을 양찰하시고 거족적 정신을 발휘해 우리 조국 재건에 매진해 주시기를 거듭 바라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해군소장 손원일.

<정리=문창재(언론인)>

200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