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타우셔 미국 국무부 차관은 최근 상원 외교위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현재 유럽연합·인도·일본이 자국 내에서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 국가들에 허용한 사례를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핵연료 재처리를 위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타우셔 차관의 발언은 오바마 정부가 최근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사용후(後) 핵연료 재처리 필요성' 주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 '평화적 핵 이용권' 차원의 재처리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핵무장'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 포석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1970년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가 다시 불거진 시점이 공교롭게도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이기 때문에 그런 의구심을 갖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핵무장' 논의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한국은 4개 원자력 발전소 원전(原電) 20기(基)의 발전량이 전체 발전량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5위의 원자력 대국이다. 20기의 원전에서 나온 매년 700t가량의 사용후 연료를 발전소 구내의 임시 저장시설인 수조(水槽)에 넣어두고 있다. 이렇게 임시 보관 중인 사용후 연료가 이미 1만t을 넘어섰고, 2016년이면 한계에 이른다. 이 사용후 연료를 재처리하면 94.4%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고, 폐기물은 나머지 5.6% 수준으로 줄어든다. 한국 입장에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긴박한 국가적 차원의 경제 현안이다.
그러나 한국이 핵 재처리 시설을 자체 보유하는 데 따른 문제도 적지 않다. 1992년부터 롯카쇼무라 원자핵주기 시설을 지어 재처리 시설을 운용 중인 일본의 예를 보면, 재처리 공장을 40년 가동하는 데 약 400조원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있다. 이런 경제적 비용을 감당해가면서 재처리시설을 자체 보유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한국이 경제적 관점에서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 같은 원자력 대국이 평화적 핵 이용권에 제약을 받는 것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주권에 관련된 문제가 된다.
타우셔 차관은 한국이 평화적 핵 재처리 능력을 갖추는 것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남북한은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포기한다'는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재처리 시설 가동은 물론, 우라늄 농축까지 공언하며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린 17년 전의 비핵화 선언을 끌어다 한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막는 근거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실효성 있고, 강제력을 갖춘 새 협정으로 다룰 일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체결한 한미 원자력협정은 2014년 만료된다. 한미는 이 협정의 개정에 관한 논의를 곧 시작해야 하며, 여기에는 한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 확대 방안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냉철한 경제 논리로 이끌어내야 한다.
'평화적 핵 재처리'는 경제 논리로 다뤄야 한다
입력 : 2009.06.30 22:02 / 수정 : 2009.06.3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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