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KT 노조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화이트보스 2009. 7. 18. 16:25

KT 노조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입력 : 2009.07.17 22:50 / 수정 : 2009.07.18 01:25

KT 노조가 17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95%의 압도적 찬성으로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했다. KT 노조는 조합원 3만명으로, 현대차기아차에 이어 민노총 가입노조 중 세번째 규모다. KT 노조의 민노총 탈퇴 결정은 앞으로 국내 노동계의 흐름을 바꿔놓는 의미 깊은 전환점이 될 것이다. 올 들어 인천지하철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영진약품, 그랜드힐튼호텔 노조 등으로 번지고 있는 민노총 이탈 움직임도 더 가속도가 붙게 됐다. 민노총은 1995년 출범 이후 최대 갈림길에 섰다.

노동운동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조직(탄생)·확대(성장)·현상유지·쇠퇴(죽음)의 발전단계를 거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KT 노조의 결정은, 노조의 정치적 힘은 강해졌는데도 노조 조직률은 계속 저하돼온 한국 노동운동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민노총이 추구해온 정치투쟁 노선의 수명이 다해간다는 얘기다. 그동안 민노총을 떠난 노조들은 한결같이 민노총의 과도한 정치투쟁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들었다.

노동운동 쇠퇴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새 피를 수혈받고, 외부 환경의 변화에 맞춰 노선과 전략을 수정하고 혁신하면 얼마든지 현재의 세력을 유지하거나 더 크게 키워갈 수 있다.

일본에선 민노총처럼 전투적 노선을 걸었던 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1989년 해산되고 온건·실리 노선의 연합노조가 출범했다. 민간과 공공부문 노조의 70%를 지배할 정도로 막강했던 총평은 1975년 공공부문의 파업권을 되찾겠다며 8일간 총파업을 벌이는 등 정치투쟁을 일삼다 조합원과 국민의 외면을 받아 스스로 무너졌다.

미국에서도 19세기 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급진적 이념을 내세운 노동기사단이 등장해 폭력행사를 서슴지 않았으나 30년 만에 소멸했다. 그 이후 정치투쟁을 부정하는 온건 개량주의 노선의 미국노동총동맹(AFL)의 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 말 영국 여론조사에선 영국의 장래 방향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총리가 아니라 석탄노조 위원장이 뽑혔다. 그 석탄노조가 광부들의 권익을 지키겠다며 1년 넘게 총파업을 벌이다가 석탄산업 자체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20만명이 넘었던 조합원도 2000명 미만으로 줄어 사실상 소멸했다.

미국 자동차산업을 쥐고 흔들었던 전미자동차노조(UAW)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중반 일본차·독일차의 공세 앞에서 경영이 악화된 GM이 근로조건을 바꾸려 하자 UAW는 54일간 파업을 벌여 회사에 2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히고 경영진의 항복을 받아냈다. 퇴직 근로자 가족들의 의료비 지원까지 받아냈다. 그 결과 경쟁력을 잃은 '빅3'는 100년 가까이 세계를 주름잡던 회사의 문을 닫고 수만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노사 관계도 산별(産別) 체제에서 기업별 체제로 바뀌는 추세다. 민노총처럼 상급단체가 정치투쟁 집회에 참석하라는 공문을 사흘에 한번꼴로 가입노조에 내려보내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금 민노총은 미국 노동기사단과 전미자동차노조, 영국 석탄노조, 일본 총평이 갔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민노총이 자멸(自滅)의 길을 걷더라도 한국 노동운동이 함께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동운동 지도부는 노사관계에 대한 철학을 완전히 바꿔,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도 살고, 근로자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는 노사(勞使) 상생(相生) 시대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 민노총이 과거의 습관을 버리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민노총 밖에서 노동운동의 새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노사협조 없이는 기업이 생산성을 높일 수도,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도 없다.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경영과 분배에 관한 투명한 정보 공개로 회사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상생의 노사관계는 기업과 노조가 함께 변하면서 노력해 달성해야 할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