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이 계속돼 퇴화"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을 포함해 'Y 염색체'를 가진 모든 수컷이 지구 상에서 사라진다. 유일한 남성 생존자는 요릭(Yorik)과 그가 기르던 수컷 원숭이뿐. 남성이 주도하던 정치·경제·산업 등 모든 세상이 혼돈에 빠지고, 남성의 도움 없이 생존하려는 여성들의 분투가 펼쳐진다. 2003년 미국에서 발간돼 인기를 끈 만화책 'Y: 더 라스트 맨'의 줄거리다.황당해 보이는 이 이야기가 먼 미래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남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성(性)염색체인 'Y 염색체'가 앞으로 수천년 뒤에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미 ABC방송이 17일 보도했다.
남녀 성을 결정짓는 것은 인간의 23개 염색체 중 마지막 염색체 1쌍이다. 여성은 'XX', 남성은 'XY' 염색체로 구성돼 있다. 염색체는 유전자들의 덩어리다.
남성의 생식 특성을 나타내는 'Y 염색체'가 꾸준히 퇴화해 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다. X 염색체를 구성하는 유전자가 1100개인 반면, 애초 X 염색체와 유전자 숫자가 비슷했던 Y 염색체의 유전자는 이제 겨우 80여개에 불과하다. Y 염색체는 그동안 교정 능력이 없이 변이와 유전자 손실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즉, 여성의 성염색체 XX를 비롯해 인간의 다른 염색체는 모두 같은 염색체들의 쌍(雙)으로 존재해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변이가 생기면 다른 한쪽의 유전자를 이용해 고칠 수 있다. 그러나 Y염색체는 같은 Y염색체와 쌍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은 지난 17일 PLoS 지네틱스(Genetics)라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Y 염색체의 유전자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 염색체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Y염색체의 종말'이 곧 '남성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을 이끈 카트리나 마코바(Makova) 생물학 교수는 "Y 염색체가 사라져도 다른 염색체가 Y 염색체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