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안양병원에서 아프간에서 피랍됐다 석방된 21명의 기자회견이 열려 제창희(오른쪽에서 2번째)씨가 가져간 책을 찢어 휴지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
피랍자 21명은 12일 안양샘병원에서 퇴원을 앞두고 가진 합동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피랍 생활을 증언하며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특히 탈레반에 의한 폭행이나 개종 강요 등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생생하고 참혹했다.
이들이 이날 추가로 밝힌 억류생활을 내용별로 재정리했다.
- ▲ ▲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안양병원에서 아프간에서 피랍됐다 석방된 유경식씨 등 21명이 아프간 피랍 상황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제창희씨의 경우 해발 3천m 남부 산악지대에서 토굴생활을 했다. 남자들은 수시로 구타를 당하며 각종 노역을 시키는 등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
심지어 토굴에 들어온 독사를 나무로 잡아야 했으며 목에 총이 겨눠진 상태에서 나뭇가지와 발로 때렸다.
여성들은 화장지가 없어 책 뜯어 휴지로 사용했다. 송병우씨는 복면을 쓴 채 구타를 당하다 구덩이에 빠지면서 가슴 뼈를 다치기도 했다.
일부 여성들은 좁은 공간에서 탈레반과 함께 있었으며 10여일간 하루 1시간씩 자며 거의 먹지못하기도 했다. 생리적 고통도 있었지만 감금생활에 따른 심리적 고통이 컸다.
- ▲ ▲ 12일 오전 경기도 안양 샘안양병원에서 아프간 피랍자 기자회견이 열려 제창희씨가 피랍 당시 입었던 옷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
서명화씨의 경우 함께 있던 탈레반들이 아프간식 이름을 지어주면서 우호적으로 대했으며 갖고 있던 휴대전화로 짧지만 한 번 남편과 통화할 수 있었다.
명화씨의 동생 경석씨는 떨어져 있는 누나와 1주일에 한 번 꼴로 쪽지를 주고 받으며 연락했다.
◇ 끝 없는 이동 = 고세훈씨 그룹은 거의 매일 밤 거처를 옮기는 등 24차례 이동했으며 항상 탈레반 2명의 감시를 받았다.
다른 그룹들도 5-12차례 정도 이동하며 헛간이나 창고, 민가 등 다양한 곳에서 지냈다.
12차례 이동한 차혜진씨의 경우 24시간 탈레반과 함께 방 안에서 지냈으며 막바지에는 2대의 오토바이에 2명씩 나눠 타고 이동했다. 남자들은 눈을 가렸고 여자들은 길을 인도하면서 탈레반을 뒤따라 갔다.
◇ 개종 기도문 강요 = 제창희씨의 경우 대검을 총에 착검한 상태에서 목에다 대고 개종을 강요했으며 5차례 정도 개종 기도문을 따라 하라고 시키면서 반복적으로 때렸다.
유정화씨는 배 목사와 함께 6명이 남았을 때 ’이슬람을 믿으면 살려주겠다’고 위협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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