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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미스터리Q] <36> 13인 개국 열성조 모시고 국혼 불어넣기 [JES]

화이트보스 2009. 7. 26. 19:12

[차길진의 미스터리Q] <36> 13인 개국 열성조 모시고 국혼 불어넣기 [JES]

7월 7일부터 대학로 극장에서 100일간의 구명시식을 올리고 있다. 예전에 없었던 긴 구명시식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토록 어려운 구명시식이 될 줄이야.

몇 달 전부터 법당이 아닌 무대 위에서 구명시식을 올린다고 하니까, 주위 사람들은 기존의 연극 구명시식과 작년 정월달의 구명시식 퍼포먼스를 떠올렸나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번 만큼은 예전과 다른 구명시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가족 중심의 조상 구명시식이었다. 가령, 나의 아버지를 비롯해 동참자들의 돌아가신 가족 조상 영가와 사건으로 인연 있는 주위 영가들. 그런데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자식이 전교 1등을 해도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 식솔들은 그 운명을 따라갈 수밖에 없듯이, 국가 운명이 달린 일이 발생하면 개인의 운은 거기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구명시식을 도중에 중단할 때가 있다. 사회와 국가에 중대한 일이 예상되면, 나는 즉시 그 자리를 접는다. 그리고 큰 일에 집중한다. 나는 올해 벽두부터 남북관계의 격변을 예고했다. 아는지 모르는지 구명시식 동참자들은 여전히 자녀를 대학에 붙게 해 달라, 집을 팔게 해 달라, 병을 낫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차법사, 나라가 흔들리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요."

영가의 준엄한 꾸짖음에 나도 더 이상 구명시식의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마침내 국운을 비는 큰 구명시식을 다짐하고, 100일간의 구명시식을 준비했다. 구명시식에서 가족의 조상을 모시듯, 우리 국가의 조상인 단군을 모시기로 했다.

그리고 모처로 기도를 떠났다. 장대비가 퍼 붓는 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에 올랐다.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좋아도 하늘의 인증을 받지 않으면 모래위에 집짓기이기에 그런 무모한 산행을 감행한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혔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무사히 끝난 줄 알았다.

100일간의 구명시식 하루 전날 새벽 3시 30분. "콰광 쾅!" 마른하늘인데 벼락이 요란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불이 번쩍하면서 스치는 게 있었다. "창업주 13인을 모셔야하지 않는가." 너무나 또렷한 음성이었다.

13인의 창업주? 대기업 창업 총수를 말하는 것인가? 나는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불현듯 백두산을 조상으로 둔 국조(國祖)의 이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조선 단군, 고구려 고주몽, 백제 온조, 신라 박혁거세, 가야 김수로……그런데 나머지 한분은 누구일까? 온종일 고민했다.

그러자 언젠가 백두산에서 만난 적이 있던 낯익은 인물이 나타났다. "나는 경주 김씨요." 후금(청나라)을 세운 누르하치였다. 이렇게 13분의 개국 조상들의 영가가 영단에 붙여지게 되었다.

혹시 이 13분의 자격을 가타부타를 따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싫건 좋건 아버지를 선택하고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분들은 분명 개국의 열성조들이다. 그 분들의 도움 없이는 이 어려운 국난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혼을 불어넣듯, 더 늦기 전에 국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120석 소규모 극장에서 올려진 100일간의 구명시식은 겉보기엔 매우 소박하고 엉성한 무대다. 나와 오랫동안 같이한 가무단조차도 연극 공연쯤으로 여기기에, 첫날부터 나에게 된통 호통을 들어야했다. 배터리를 분리한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고 문자가 도착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이어졌다.

국혼을 불어넣는 100일간의 구명시식. 내 가족의 조상만 조상이 아니라 크게 보면 13분의 개국열성조도 우리들의 공통 조상이다. 비록 내가 객석에 있든 없든 동참자들의 마음만으로도 밀고나가는 매우 실험적인 대중 구명시식이다.

이번만은 동참자들이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를 향한 기도를 하리라 기대한다. 나 하나보다 동참자들 하나하나의 정성이 13분의 개국열성조를 더욱 감동시키지 않을까. 나의 국가가 아니라 우리들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hoo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