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中), 북한붕괴에 대비하자는 미(美) 제안에 왜 반발하나
"북(北), 유사시 기댈 곳은 중국 우리가 왜 미(美) 장단에 춤추나
미국의 제안 배후는 한국,중국 떠보려는 것 아니냐"
미국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사후(死後)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사태에 대비한 비상대책 논의를 중국에 제안했다가 거부당했다는 AP통신의 보도에 대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를 1면 톱기사로 전하며 "미국의 제안은 중국·북한 간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술책"이라고 비판했다.중국이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로 북한을 자극해 북·중 관계가 극도로 냉각될 수 있다고 본다. 포스트-김정일 대책을 미국과 협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북핵 문제의 중재자'라는 중국의 입지는 흔들리게 된다. 중국동포 출신의 김경일(金景一) 베이징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주권 국가의 미래를 놓고 외부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는 엄청난 자극"이라며 "북한이 반발하면 자칫 동북아 정세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에 부여하는 '지정학적 중요성'도 있다. 중국에 북한은 미국과의 대립 구도에서 '완충 지역'이다. 만약 북한 정권이 위태로워질 경우, 북한이 일차적으로 구원을 요청할 대상은 중국이다. 중국으로선 아직 임박하지도 않은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과 논의함으로써, 이런 압도적 '지위'를 훼손할 이유가 없다.
- ▲ 北사리원 야외수영장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한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사리원 야외수영장의 모습. 북한 청소년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조선중앙TV·연합뉴스
환구시보에 따르면 미국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김정일이 두 달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작년 8월, 2차 핵실험 이후인 올 7월 등 최소 세 차례 중국에 비상대책 마련을 제안했다. 중국은 이를 일관되게 거부했다. 그런데 AP 보도가 또다시 나온 것에 대해, 군사 전문가 다이쉬(戴旭)는 환구시보에 "중국과 북한을 떼어놓겠다는 구상이자 음모"라고 말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국과 시각을 달리한다.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이 북한의 취약성을 '과장'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북한 붕괴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그런 상황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위완리(余万里)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부연구원은 "북한의 붕괴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일부를 차지하는 빌미를 주는 일"이라며 "그런 상황이 발생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환구시보는 또 '북한 붕괴 시 대책 논의'의 배후로 우리나라를 지목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북한 전문가를 인용해, "비상대책을 마련하자는 미국 제안의 뒤에는 한국이 있다"며 "한국은 이번 제안을 통해 북한에 들어설 미래 정권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떠보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 붕괴에 대비해 미·중 양국이 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현실론도 고개를 든다. 스인훙(時殷弘)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이 5~6년 내에 사망하고 어린 김정운이 승계한다면 북한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권력 투쟁이 경제적 곤란, 외부의 대립적 환경과 결합하면 북한 정권은 급격히 붕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도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논의 사실이 북한에 새나갈 수 있다는 게 고민"이라며 "북한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 미국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롄구이(張璉��)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도 "북한 붕괴에 대비해 지금 미국에 중국의 이해관계 보장을 요구하지 않으면, 나중에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