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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동쪽 끝이라는 호산장성에서

화이트보스 2009. 9. 29. 11:41

만리장성 동쪽 끝이라는 호산장성에서
박종인  박종인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09.09.28 15:07

중국 국가문물보호국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을 기존의 하북성 산해관(山海關)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떨어진 압록강 하류의 요녕성 호산장성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이게 28일 신문 기사다.

 

원래 만리장성은 감숙성 가욕관에서 하북성 산해관까지라고 했다. 그게 중국 사서에 적힌 내용이다. 그런데 이게 최근 10년 사이에 사료 재해석과 유적 재발굴(?)을 통해서 점점 동쪽 기점이 동진하더니 마침내 호산장성이 그 기점으로 확정된 것이다. 호산장성은 북한 신의주와 마주보는 단동(丹東)에 있다.

 

호산장성은 고구려 고성인 박작성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박작성 성벽이 남아 있고 또 고구려 때 팠던 옛 우물터도 남아 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소위 동북공정의 ‘음모’에 분노하며 이에 대항하는 논문을 쏟아붓고 있는 형편이다.

호산_장성_원경_세로.jpg

 

호산_중국쪽_원경.jpg

 

 

그 분위기를 나 또한 품고서 호산장성에 가봤다. 오케이, 눈에 띄기만 하면 다 죽인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자, 내 마음과 비슷한 심리를 갖고 있을 분들도 이 포스트만큼은 조금은 시니컬하게 조금은 객관적으로 읽고 보고 느끼시길. 소재는 호산장성이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호산을 둘러싼 서글픈 분위기였다.

 

호산1.jpg

 

자, 호산장성 입구다. 호산장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임을 입증해낸 현재 장성학회 부회장인 라철문(羅哲文)이 기념비에 글을 썼다. 이 사람은 또 그 감격을 시로 적어 돌에 새겼다.

 

호산_시비.jpg

 

무식하게 해석하자면 이럴 것이다.

 

푸르고 푸르도다 압록 강물이여
빼어나구나 너 호산 머리 위 산성아
너로 시작하여 만리가 신의 땅으로 이어지네

하하, 무지몽매한 내 해석이 우습다.

 

호산_안내.jpg

 

그리고 안내문이 나온다. 안내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명나라 시대인 1469년 호산장성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며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다. 경내에는 고구려 천년 우물이 있고, 중-조 국경 거리가 가장 짧은 ‘한 보(一步跨) 등이 있다(...)

두가지. 첫째 고구려 천년 우물이 있다. 없다고 한 적이 없다. 둘째, 명대에 호산장성이 건설됐다. 진시황이 만들었다고 한 적 없다. 워낙에 만리장성이라는 것이 이러저러한 시대에 통털어 만들어진 성벽을 이어서 부르는 통칭이었다. 자, 교묘한 수사법인지 아니면 얘네들이 객관적인지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 고구려 산성이 없다고 한 적도 없고 진시황이 만들었다고 거짓말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지랄이야 하는 식이다.

 

호산_지도.jpg

 

안내지도에도 또렷하게 고구려 성벽과 우물터가 그려져 있다. 오로지, ‘고구려’라는 국가가 어떤 국가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을 뿐. 한국인이 보면 미필적 고의요, 저들이 스스로 보기에는 중국 역사이니 굳이 태양을 태양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기념상 앞에는 호산장성박물관이 있다. 그 앞에 시비가 있다. 조선-중국 역사에 대한 분노아 낭패는 이쯤에서 학자들에게 떠맡기기로 한다.

 

호산_박물관_간판.jpg

 

박물관에서 오솔길로 조금만 가면 ‘咫尺(지척)’이라고 새겨진 돌이 나온다. 코앞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뒤로 한번 보는데 2위안(한 400원?)쯤 하는 망원경이 서 있다.

 

호산-지척.jpg

 

호산_2원.jpg

 

지척에 있는 뭘 구경하라고? 바로 이거다.

 

호산_북한_집단1.jpg

 

직선거리로 20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섬이 있다. 이름하여 우적도(于赤島). 북한보다 중국에 더 가까운 북한땅이다. 거기에서 북한 인민들이 섬을 에워싼 철조망에 갇혀서 집단농사를 짓고 있다. 한국돈 400원을 주고 구경할 ‘동물’이 바로 이들이다. 갑자기 호산장성 봤다가 잊혀졌던 쓴 맛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문자를 이해할 줄 알고, 사랑을 하고 분노를 할 줄 아는 저들을 400원 주고 구경해?

자, 배를 탄다. 압록강 유람이다. 배를 타고 보는 것은 이 우적도를 한바퀴 도는 거다. 다음은 그 동안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다.

 

1.우적도는 중국쪽 변경은 철조망으로 빽빽하게 가로막혔다. 중국인이 북한으로 갈 리 없으니, 이는 필시 북한 주민들이 중국쪽으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함이다.

 

호산_철조망.jpg

 

2.여인 하나가 걸어갔다. 손에는 장작이 한 아름 쥐어져 있다.

 

호산_여자.jpg

 

3.압록강에서 본 호산장성 모습. 이게 옛날부터 있던 모습이 아니다. 단동에 사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몇 년 전부터 밤만 되면 큰 트럭들이 엄청 돌들을 싣고 이리로 들어갔다가 빈 트럭으로 나왔다”고 했다. 만든 것이다. 북경에 있는 팔달령에 가면 이것들과 ‘똑같은’ 쌍둥이 성벽을 볼 수 있다.

 

호산_압록강쪽_모습.jpg

 

4.우적도 집단마을 모습. 오른쪽 멀리 호산장성 꼭대기가 보인다. 집들, 똑같이 생겼다. 집들 가운데에 빨간 간판이 보인다. 확대해보면 아래와 같다. 기대했던대로, 역시나다.

 

호산_우적도_집단주택.jpg

 

호산_우적도_집단주택_세부.jpg

 

5.우적도 여인.우적도에서 여인들이 물가로 나와 빨래를 했다. 원래 이렇게 근접해서는 아니될 것인데, 배 주인한테 돈만 주면 가준다. 이 또한 위에 400원짜리 망원경과 똑같다. 떠나기 전에 먹을거, 담배, 술 따위를 배주인한테 산 다음에, 섬에 접근해서 던져주는 것이다. 아, 한국사람은 던지면 안되고 중국사람들만 된다. 기분 더럽다.

 

호산_우적도_여인.jpg

 

 

6.이 여인은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어떤 여인은 손사레를 치며 화를 냈다. 섬을 한바퀴 돌고 돌아왔을 때, 우리가 줬던 까만 봉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동영상을 보라.

 

허겁지겁 올린 포스트이지만, 오늘 뉴스로 그때 풍경이 갑자기 떠오르기에, 이 기분을 일기 쓰듯 기록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