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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 형가의 의거

화이트보스 2009. 9. 29. 15:18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응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을 이룰고
동풍이 점점 차가와 짐이여 장사의 의기 뜨겁도다
분기히 한번 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도다
쥐도적 이토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


안중근, '장부가(丈夫歌)'


형가 (詠荊軻)의 노래


연나라 태자 단(丹)은 인재를 아껴
강한 진나라를 쳐 보복하고자 했다
뛰어난 장사들을 모으던 그는
마침내 형가(荊軻)라는 영웅을 얻었다
군자는 지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형가는 칼 차고 연나라를 떠났노라
흰 말은 큰 길에서 울부짖고
사람들 비장하게 전송을 했다
곤두선 머리칼은 관을 치켜 받쳤고
사나운 기상 갓끈을 불어 날렸다
역수(易水) 강가에서 송별연을 여니
사방에 영웅들 떼 지어 앉았고
고점리(高漸離)는 비참하게 축(筑)을 튕기고
송의(宋意)는 높은 소리로 노래를 하며
소소히 애닮은 바람 불어 스치고
맑은 강에 출렁이는 파도가 차다
격한 상조(商調)에 더욱 눈물 흘리고
웅장한 우조(羽調)에 장사들 격동 하여라
한번 가면 다시 못 돌아오리
오직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저
수레에 오른 그는 돌아 볼 틈도 없이
진나라 대궐 향해 날듯이 달렸노라
만리 길을 막바로 모두 지났노라
지도 속에 칼을 숨겨 일을 벌이니
진왕이 기겁하여 놀라 도망쳐
칼 솜씨 생소하여 아까웁게도
기발한 공을 세우지 못하였노라
비록 형가는 이미 가고 없으나
천년 지난 오늘에도 뜻이 전하네 (주석 1)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흔히 전원시인으로 알려진다. 대표작 '귀거래사(歸去來辭)'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주자(朱子)는 "'영형가(詠荊軻)'를 도연명의 본색을 나타낸 시"라 하고, 양계초(梁啓超)는 "도연명은 자못 열혈에 타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그를 오직 싸늘한 염세자로 보아서는 잘못이다."라고 평가하였다. 협객 형가를 찬양하는 시 '영형가'를 두고 한 말이다.

전국시대의 협객 형가는 연나라의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나중에 진시황이 된 진왕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도리어 진나라 대궐 안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도연명은 이를 두고 장엄한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이것이 '영형가'이다. 협객 형가의 의거가 성공했더라면 전대미문의 폭군 진시황의 폭정은 일찍이 그 싹이 제거되었을 것이다.

안중근은 해삼위에서 더 이상 대규모적인 의병모집과 항일전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의병전쟁의 한계성을 인식하면서 의열투쟁으로 선회하려는 찰나에 국적 이토의 만주 방문 소식에 접하게 되었다. 자신이 소싯적부터 연마한 사격술은 '늙은 도적' 하나 처단하기에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안중근이 의열투쟁으로 전술을 바꾸게 된 것은 러시아 당국의 변화된 태도에도 기인한다. 일본의 압력을 두려워한 러시아는 한인의 의병활동을 탐탁치않게 여기면서 점차 간섭에서 억제 ․ 탄압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중근은 러시아 당국과 러시아인들에게 한인의 독립열망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럴 즈음에 이토의 등장은 안중근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주석
1- <도연명전집>3, 북경인민출판사, 421쪽.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