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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한 옳은 소리

화이트보스 2009. 10. 21. 11:27

전교조가 한 옳은 소리

  • 이재교 변호사교육선진화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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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20 21:58 / 수정 : 2009.10.20 23:33

이재교 변호사교육선진화운동 공동대표
경희대 한의학과에 정원의 일부를 영어 우수자로 선발하는 국제화 특기자 전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대전대 한의학과도 영어 잘하는 학생을 일부 뽑는 것은 어떤지. 요즘 우수한 학생들이 외고로 몰린다니까 이들 대학이 우수한 외고생을 유치하려고 영어와 아무 관계없을 것 같은 한의학과까지 영어 특기자를 뽑는 것일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폐지론이 나오고 있다.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여당 의원은 "외고가 설립 목적인 외국어 특기 인재 양성 대신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사교육비 팽창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뭔가 오해가 있다. 외고의 설립목적은 외국어 특기인재 양성이 아니라 외국어 교육이다. 고졸 통역사나 번역사를 양성하려고 외고를 만든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외고는 고등학교다. 고등학교는 최종 학교가 아니므로 고등학교의 교육은 대학진학을 전제로 한다. 대학진학은 외고의 주요 목적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고가 외국어 교육과 함께 대학입시에 힘쓰는 것은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것이다. 외고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려면 외고를 졸업하면 대학진학이 어렵다거나 외국어로 편지 한 장 못 쓴다고 개탄해야 한다. 외고 졸업생들이 그러하던가?

우리 세대는 영어만 잘해도 행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어는 수단일 뿐이다. 3개나 5개 외국어에 능통한 회사원은 물론, 불어로도 작품을 쓸 수 있는 소설가, 중국어에 능통한 변호사, 영어로 음양오행을 설명할 수 있는 한의사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영어와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한의학과에서 영어 특기자를 뽑는 이유다. 그러니 외국어만 잘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매진하지 않는다고 외고를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그러면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비난은 어떤가? 외고를 폐지하고 자율고로 전환시킨다는데, 그런다고 사교육이 줄어들까? 누구나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없는 이상 사교육은 형태만 달리할 뿐 줄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공교육을 강화하여 사교육의 필요성을 줄이는 길뿐이다.

그리고 외고를 없애면 외국어에 능통한 인재는 어떻게 만드는가. 외국에 있는 고등학교를 보내면 되겠다. 물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집 아이는 갈 수 없겠지만. 서민이 해외 유학을 보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외고는 보낼 수 있었는데, 외고가 폐지되면 그마저도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해서 외고 입시 비용이 없어진다고 서민들이 과연 고마워할까? 아니, 이게 사교육비 경감일까?

노무현 정권은 외고를 평준화의 장해물로 보고 폐지하려 했다. 평등을 중시하는 정권의 성격상 이해는 된다. 그러면 자유를 중시하여 수월성 교육을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의 일각에서 외고 폐지론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면 정부의 지지율이 오르고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겠다. 딴은 맞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비만 해결해주면 국민은 표 정도가 아니라 무투표로 당선시켜 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외고를 폐지하면 실제로 사교육비 부담이 경감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정치가 표만 바라보면서 나라의 장래를 저버린다면 어찌 되는가. 무역의존도 70%를 넘나드는 대외지향적인 사회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사람이 거의 유일한 나라에서, 당장 표가 된다는 이유만으로는 그나마 글로벌 인재의 산실인 외고를 폐지한다면, 10년 후 100년 후에 뭘 먹고 살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 동훈찬 정책실장은 "여권의 외고폐지론은 선거를 의식한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전교조가 옳은 소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