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m 천왕봉에 올라서자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이 길게 드러난다/2009. 10. 23
아들과 함께 한 지리산 종주(마지막날 세석에서 천왕봉까지)/2009. 10. 22~23
세석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모두가 출발한 후에 느긋하게 종주를 이어갔다.
고된 산행의 마지막 하산시에는 발목과 다리의 근육이 풀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아들의 무릎근육이 뭉쳐진 점을 감안해서 각별히 사고에 유념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천왕봉에서의 중산리까지 하산은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거리가 좀 멀지만
편히 갈 수 있는 순두류를 거치면서 세석에서부터 총 12.9km를 8시간에 걸쳐 종주를 마무리 했다.
이로써 이틀간 총 35.8km, 20시간 20분의 지리산 종주는 무사히 끝났다.
연중 붐빈다는 지리산도 종일 한적했고,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도 넉넉히 보내고 다시 출발한다.(08:00)
바로 위에 있는 촛대봉을 빠져 나오면서 어제와는 다른 암봉미가 펼쳐진다.
무릎근육이 뭉쳐졌지만 적당히 쉬면서 여유있게 하루를 마치기로 한다.
기온도 많이 올라서 처음부터 제법 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 주변은 고사목이 많다. 자연훼손의 주범은 역시 사람이다.
삼신봉과 연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천왕봉까지는 1700고지에서 1900고지를 넘나든다.
삼신봉 근처에서 까마귀 떼들이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이 너른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는 모든 생명체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하봉에는 고사목과 새로 자라나는 구상나무가 뒤섞여 있다.
연하봉을 지나자 제석봉과 천왕봉이 성큼 눈앞에 다가온다.(09:30)
연하봉까지 걸어온 능선이 어릴적 추억처럼 되새겨진다.
장터목대피소도 한적하다. 인적 없는 지리산 종주를 하게된 것도 행복한 일이다.(09:40)
물통에 생수를 보충하며 30분간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한다.
지리산 종주가 끝나면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된다더니 아들의 뒷모습도 어제와는 다르게 거지몰골이다.
종주의 마지막 장소인 중산리 방향이다.
제석봉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구상나무의 무덤이다.
사람들로 인해 죽은 나무를 이제는 사람들이 심고 가꾸며 복원 중이다.
우리나라도 국립공원의 관리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심어놓은 나무들은 많이 죽어 있어서 환경의 복원이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제석봉에서 본 연하봉. 제석봉에서부터 1800고지가 시작된다.(10:30)
모든 계곡이 급류처럼 위로 치고 올라와 높은 고도를 실감한다.
웅장한 천왕봉이 드디어 위용을 드러낸다.
뒤로는 멀리 반야봉이 가물거린다.
짙은 가을수목의 달콤한 향기가 계곡을 따라 올라온다.
점점 기암절벽이 가파른 형상으로 변한다.
이제 대장정의 마무리를 해야할 시간이다.
아쉬운 풍경들을 하나씩 뒤로 흘려 보낸다.
아들도 나도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경치를 보며 걷는다.
칠선계곡 방향의 한 능선은 길게 산사태가 나서 깊은 골이 생겼다. 암봉 하나가 새로 생기는 과정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름마다 이정표처럼 고목이 서있다.
까마득한 계곡 아래에는 천왕봉의 젖줄을 먹고 사는 마을들이 있다.
지리산은 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남겨 놓고 간 흔적이 가까이에 흩어져 있다.
점차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 아래에 위치하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들은 햇빛을 따라 남쪽으로 모여 모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이 들리기 시작한다.
모든 능선은 한 곳으로 몰려 위로 치닫는다.
모든 계곡도 한 곳으로 몰려 올라온다.
그 위로 사람들도 올라간다.
우리도 올라간다.
모두가 모이는 그곳은 천왕봉의 정상이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정상에 우리가 섰다.(11:30)
천왕봉 정상조차 인간의 허욕을 말해주듯 케이블카 건설을 반대하는 깃발이 펄럭인다.
점심을 먹고 하산을 준비한다.(12:20)
하산하며 아쉬움에 천왕봉을 돌아보니 무척 가파르다.
하산할수록 단풍이 절정이다.
아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말이 없더니 무릎보호대를 찼다.
실질적인 종주의 끝머리인 법계사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해서 30분간 휴식을 취한다.(13:30)
칼바위 코스보다 2km 더 걸어야하지만 단풍구경을 하기 위해 순두류에서 자연학습장으로 걸었다.
중산리에 도착하여 이틀에 걸친 부자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16:00)
아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추억으로 남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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