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1일 한국 대표단 찾아 “중국 설득해달라”
중국, 12일 한국과 대화 후 강경 입장 누그러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환경운동가와 시민 등이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코펜하겐 AFP=연합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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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단 관계자에 따르면 회의 개막 닷새째인 11일, 미국 대표단이 한국 측에 “잠시 따로 만나자”고 제안했다. 미국 측은 “중국이 버티고 있어 협상에 진전이 없다. 중국을 좀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은 개막 직후 “모든 나라의 이산화탄소(CO2) 감축 목표치와 실제 이행 여부를 제3자가 검증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이에 반발했다. “우리가 제시한 CO2 감축 목표를 지키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외부 기구의 검증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내정 간섭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지구온난화의 책임 소재와 개발도상국 재정 지원 문제를 놓고서도 대립해 왔다.
미국 대표단 관계자는 한국 측에 “중국이 입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가 거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뜻이 없는 것인지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측은 곧바로 중국 대표단에 회동을 제안했고 중국은 선뜻 응했다. 한국은 이미 자발적으로 CO2 감축안을 내놓고 선진국의 재정 지원도 요구하지 않아 이번 회의에서 ‘모범생’으로 통한다. 그런 점에서 개도국 그룹 국가들은 한국을 선진국 그룹과의 대화 통로로 여기는 분위기다.
결국 12일 오전 한국 대표단은 중국 대표단을 만났다. “미국의 성의 있는 참여를 끌어내려면 중국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포괄적 협상이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중국이 전격적으로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면 미국이 개도국 그룹에 대한 재정 지원 규모를 크게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30분간의 만남으로 중국의 입장을 180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완강했던 태도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게 한국 대표단의 설명이다. 한국 측은 또 미국 대표단에 “중국의 태도가 협상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제3자 검증’을 자존심 문제로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 회의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한국이라는 창구를 통해 대화하며 서로의 입장을 정리하는 중이다.
미·중뿐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중간 그룹 성격의 나라들도 한국의 역할에 희망을 걸고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제3자 검증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 멕시코·칠레·싱가포르·인도네시아·페루 등이다. 이들은 중국·인도 등과 달리 국제적 기준에 따른 검증은 받겠다고 한다. 이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건 선진국들로부터의 지원 규모다. 선진국-개도국의 다리 역할을 하는 한국이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과의 조율을 통해 개도국에 대한 지속적인 재정 지원 약속을 얻어내 주길 바라는 눈치다.
정래권 한국 기후변화대사는 “최종 합의문 작성에 결정적 역할을 할 14, 15일 실무자급 회의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꽉 막힌 회의 분위기에 물꼬를 트는 활약을 할 거라는 기대가 많다”고 전했다.
코펜하겐=전진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