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4005명 살린 라루 선장은 가톨릭 수사 돼 2001년 사망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71년 퇴역, 93년 고철로 팔려
‘메러디스 빅토리’호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껏 이어진 ‘인연’을 남긴 경우도 있다.
레너드 라루(사진) 선장이 그렇다. 선원 생활만 22년을 한 베테랑인 그는 흥남 철수 무렵 항해일지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이들 선량한 사람들도 죄 많은 자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고 있다”는 글을 남길 정도로 평소 신앙심이 깊었다(『생명의 항해』, 안재철 지음). 한국전이 끝난 이후인 54년 종교에 귀의, 뉴저지의 바오로수도원의 ‘마리누스(Marinus)’ 수사가 됐다.
마리누스는 “바다(marine)가 아닌 성모 마리아에서 따왔다”고 한다. 2001년 숨졌지만 한국과의 ‘끈’은 끊기질 않았다. 그가 숨지기 이틀 전 바오로수도원은 한국의 왜관수도원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이후 왜관수도원의 수사들이 바오로 수도원에 파견돼 수도활동을 하고 있다.
라루 선장의 장례미사에 우연히 참석했던 이가 안재철 월드피스자유연합 대표다. 라루 선장의 삶에 크게 감화된 안 대표는 이후 흥남철수 관련 1117쪽의 방대한 『생명의 항해』를 펴냈다. 26일부터 사흘간 청계천에서 6·25 전쟁 사진전을 연다.
선원 중엔 당시 22세였던 로버트 러니 변호사가 자주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었다. 그는 “라루 선장은 우리들이 행한 일은 특별한 게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서 인간이 해야하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했다”며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경제 기적을 이뤄낸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곤 했다.
45년 건조됐던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71년 퇴역했고 93년 고철용으로 판매됐다. 그리곤 중국에서 분해됐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