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신중국 60년

중국 서부에서 떠올린 세종시

화이트보스 2010. 2. 11. 11:15

중국 서부에서 떠올린 세종시

입력 : 2010.02.10 23:02 / 수정 : 2010.02.11 01:49

중국 출장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좁은 자리 때문이 아니라 다시 접하는 짜증나는 국내 뉴스 탓이다. 여기도, 저기도 '세종시'다.

세종시 건설안은 '국토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서부(西部)대개발'과 닮았다. 하지만 출범 8년 된 세종시는 아직도 땅만 파고 있는 반면, 서부대개발은 중국 내륙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지역 불균형이 훨씬 심한 나라다. 지난달 중국 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2009년 말 농촌 주민 1인당 연간 소득은 5153위안(약 755달러)으로 도시 거주민(1만8858위안·2762달러)의 3분의 1도 안 된다. 또 연해 대도시는 한국 생활 수준에 접근했지만, 중서부는 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같은 불균형이 국가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채택한 것이 '서부대개발' 전략이다.

50년 사업의 1단계(2000~2009년) 공정이 작년 말 끝났다. 이 기간 중국은 1조위안(약 170조원)을 들여 중서부의 도로·철도·항만·전기·가스 등 기반시설(SOC)을 획기적으로 정비했다. 지난 1월 중경(重慶)에 갔을 때, 사통팔달의 교통·물류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경 시내를 흐르는 장강(長江)에 큰 컨테이너선들이 오갔다. 삼협댐 건설로 장강 수위가 올라가 3000t급 배들이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에 중경시는 컨테이너부두를 1개에서 3개로 늘려, 물동량의 95%를 해결하고 있었다. 중경시 금룡공업구에 입주한 한국 웨스트엘리베이터사의 권오철 사장은 "회사에서 제품을 싣고 40분이면 항구에 닿고, 항구를 출발한 배는 장강과 황해를 거쳐 전 세계로 나간다"면서 "중국 내륙에서 이렇게 간편하게 수출품을 선적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라고 말했다.

성(省)과 성을 연결하는 도로망도 시원스레 뚫려, 10시간 걸리던 중경~성도 간(380㎞)이 4시간으로 단축됐다. 광동성 잠강까지 가는 1100㎞ 고속도로도 지난해 연결됐다. 더 놀라운 것은 고속철도다. 작년 말 개통한 무한~광주 간 고속철도는 세계 최고 시속 394.2㎞로 1068.6㎞를 3시간 만에 주파한다. 아침에 광주를 떠나 점심때 무한의 민물고기 요리를 먹고 오후에 광주로 돌아올 수 있다. 거대한 대륙이 1일 생활권으로 변했다. 서부대개발 사업의 '약효'는 확실하다. 2008년 말까지 중경시에 투자한 외국기업은 포드·HP·혼다·노키아·에릭슨·ABB 등 4000여개에 달한다. 2·3단계 사업까지 진행되면 이 지역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세종시'가 허허벌판에 정부기관 몇 개 옮겨 도시를 만들겠다는 '위로부터의 접근법'이라면, 서부대개발은 기업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밑으로부터의 접근법'이다. 어느 쪽이 지방발전에 효과적일지 자명(自明)하다. 게다가 세종시는 겉으론 '국토 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제론 '충청표'를 노린 정치적 계산이 더 작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득표에) 재미 좀 봤다"고 했다. 중국의 1개 성(省)보다 면적이 작은 한국에 사실상 2개의 수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에 한나라당도 동의했었다.

중국의 부상과 미·일 경제력의 약화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한심한 일을 계속해도 되는 것일까? 균형발전과 관계도 없는 세종시 논란은 그만두고 전국을 대상으로 한 진짜 국토 균형발전 계획을 짜야 한다.